
2002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의 종착지에 다다른 영천시 남부동 괴연 마을은 석양을 맞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는 동안 갖가지 색으로 떠들썩했던 들판엔 모두 떠나고 바람소리만 남아 윙윙댄다.
앙상하게 마른 대나무가 몸통을 부대끼며 내는 겨울 소리는 스산하기까지 하다. 여름에 들었다면 부챗살이 일으키는 시원한바람소리를 닮았을 게 틀림없다.
이 마을 김달수(74)할머니 댁. 17세에 이 마을로 시집온 할머니에게는 쉰 일곱 번째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이다. 새댁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겨울이 춥듯 할머니의 겨울 준비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낡은 한옥 문짝은 든든하게 손을 봐 놓았다. 겨울 땔감도 마당 한쪽에 넉넉하게 쌓아두었다. 찬바람에 나들이 엄두를 못 낼 서너 달 동안 방을 후끈하게 데워 줄 것이다.생각 같아서는 직접 마을 근처 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몇 해전부터 몸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쌓아둔 땔감은 영천시내 목재상에서 쓰고 남은자투리를 사온 것이다. 5만원이면 한 겨울을 날만한 양을 구할 수 있다. 자녀들이 모두 함께 살던 시절엔 이 정도로 어림도 없었지만 지금은 방 하나만 뜨끈하게 데우면 그만이다.
불쏘시개로 쓸 마른 솔가지와 솔잎도 마대에 가득 담아 두었다. 장작불을 붙이는데는 그만이다. 지난 가을 쉬엄쉬엄 모아 둔 것들이다. 김 할머니는 혼자 살지만 메주는 넉넉히 매달아 두었다. 설을 지나면 담갔다가 아들네, 딸네에 조금씩 나눠 줄 생각이다. 몸에 기운이 빠지기는 했지만 장 담그기라면 젊은 사람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으리라.
김장도 다 끝냈다. 김장김치를 담아둔 장독대에는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다. 김 할머니는 웬일인지 바지런하게 굴지 않아도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이 들면 몸에 때가 덜 생기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라며 할머니는 웃는다.
김 할머니 집 문 채 쪽의 슬레이트 지붕은 온통 푸르죽죽한 꽃무늬를 이고 있다. 꼭 늙은이의 얼굴에 피는 저승꽃을 닮았다. 오랜 세월 뜨거운 태양과 찬 비바람에 색이 바랬나 보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올린 지붕이니 30년도 훨씬 지났으리라.
그러나 얇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허술하지 않다. 여태 빗물이 스며들어 애를 먹인 적은 없다.어쩌면 작고 구부정한 김 할머니의 몸이 크게 애를 먹인 적이 없는 것과 닮았다.
이제는 늙어서 서 있기조차 힘들다고 말하는 김달수 할머니. 그러나 능숙한 솜씨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그의 얼굴엔 벌써 따끈한 군불의 미소가 배어나고 있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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