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안동간고등어 한손을 사들고 안동시내 신시장통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당시 류영동(44.안동간고등어 대표)씨와 최종성 매일신문 북부지역본부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안동간고등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특산품 개발을 고민할 때였다.
이들의 움직임이 신시장 어물전 상인들의 작은 모임으로 발전하면서 매일신문 지역경제살리기 캠페인용 사진촬영이 있었다.
IMF 직후였던 당시 장바닥에서 노점상 할머니 한분을 즉석 모델로 섭외하고 "과연 캠페인 소재로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해가 흐른 지금 안동간고등어는 신시장통 한구석을 벗어 나 전국 유명백화점과 대형마트를 통해 우리 서민들의 밥상을 점령(?)해 버렸다.
이 엄청난 먹을거리의 반란에 한몫했다는 생각이 안동간고등어 생산 체험을 위해 안동시 일직면 (주)안동간고등어 작업장을 찾는 발길을 가볍게 한다.
오늘 저녁 식탁은 내가 만든 간 고등어 한마리로 '임금님 수라상'이 될 게 분명하다.
▨"요새는 금고등어"
새벽 2시. 짙은 어둠이 깔린 (주)안동간고등어 작업장은 하루종일 분주함을 털어내고 고요하다.
작업장 뒤뜰에 모여사는 진돗개 식구들만이 간간히 지나는 차량소리에 짖어댄다.
간고등어 생산체험을 위해서 먼저 부산 고등어 위판부터 보기로 했다.
10여분쯤 지나자 각종 언론매체로 알려져 유명세를 타고 있는 40년 간잽이(정확하게 말하면 45년) 이동삼(63) 공장장이 사람좋은 인상으로 인사하며 도착했다.
"마이 춥니더. 요새는 고기가 얼마나 비싼동 금고등어 아이껴". 투박한 안동 사투리에 배어있는 건 역시 원료구입 걱정이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5t 냉동트럭에 올라 부산으로 향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서 간고등어 수요가 늘자 원료구입부터 공장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좋은 고등어를 확보해야 최고의 간고등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열일곱살되던 해부터 고등어에 염장지르는 일을 했어요. 고등어와 소금으로 사십오년 세월이 훌쩍 지난거죠".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 들은 이동삼씨의 간잽이 인생은 차창밖으로 지나는 어둠속 풍경같이 인생역정처럼 스쳐갔다.
소작농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씨가 간고등어를 처음 접한 것은 열입골살 무렵. 나뭇짐을 시장에 내다 팔고 돌아오는 길에 새끼줄에 매달아 온 간고등어 한손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놓았다.
그때 경험한 간고등어 맛은 황지 탄광에서의 막장일 인생 내내 입가를 맴돌았고 군을 제대한 후 곧장 안동 어물도가에서 간잽이 인생을 시작하게 했다.
"처음엔 허드렛일만 시키잖아요. 열 받아서 어깨너머로 칼질을 익혔잖니껴. 언젠가는 전국에 입소문 한번 내야지 하면서 말이시더. 허허".
부산시 충무동에 자리한 공동어시장에 들어서자 비릿한 내음이 새벽 코끝을 자극한다.
전국의 상인들과 중도매인들이 갓 잡아올린 싱싱한 고기를 구하기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공장장 이씨도 도착하자마자 위판대에 늘어선 고등어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구입할 물건들을 고른다.
이 곳에서 30여년간 고등어만 전문적으로 취급해 온 중매인 김성일(54)씨를 만났다.
(주)안동간고등어에서 필요한 고등어는 모두 김씨 손을 통해 수집된다.
'40년 간잽이 이동삼과 30년 고등어 중매인 김성일' 등 최고들의 손에서 간고등어가 출발하는 셈이다.
경매가 시작되고 2시간에 걸친 경매에서 5천상자(상자당 30∼40마리)를 사들였다.
어른 팔뚝만한 고등어가 상자당 20만원까지 치솟아 1마리당 7천원을 넘고 있다.
이 곳에서 중매인들 사이에는 '최상급은 안동간고등어가 모두 가져간다'고 이미 인식돼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금고등어'를 산 것. "이러면 손해보는거 아니냐"는 기자의 말에 "전국 제일이 되자면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야지, 손해보는 장사도 감수해야죠".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바로 고등어 상자를 차에 실었다.
물을 머금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 상자는 20kg이 넘었다.
몇 상자를 나르다 이내 꾀병을 부리자 이씨는 "안동간고등어 한마리 먹으면 다 괜찮아진다"며 재촉한다.
▨"손이 10번가야 간고등어"
체험 이틀째는 어제 부산에서 구입한 고등어로 직접 간고등어를 생산해내는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새벽 날씨가 제법 차지만 그래도 겨울답게 서리도 내리고 뽀얀 입김도 정겹다.
두툼한 바지에다 외투를 걸치고 (주)안동간고등어 출근 차량에 올랐다
차량에는 벌써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2년째 고등어 할복(배가르기)공정에서 일한다는 한 아주머니는 "몸도 약한 젊은이가 종일 서서 일할 수 있을란가"라며 은근히 겁을 준다.
밀려드는 주문과 인기로 하루 1만5천손(3만마리)을 만들어 내는 강행군 속에서도 아주머니들은 일이 즐겁다고 했다
설 명절이 끝나면 지역 처음으로 주5일제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오전 8시30분. 일직 작업장에서 공장장 이동삼씨와 최용남(60)상무로부터 생산공정과 작업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원료 구입에서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10번 손이 가야 되니더" "아무리 공정이 자동화됐다 해도 염도를 맞추고 염장을 지르고 숙성을 시키는 작업은 오랫동안 숙련된 기술이 아니면 안되지요".
체험 첫 공정은 고등어 배가르기(割腹). 1층 공장으로 내려가자 벌써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사각의 작업대 위에 수천마리의 고등어를 늘어 놓고 일에 열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가르는 것. 하지만 좀체 칼질이 마음 먹은대로 되질 않고 자꾸만 고등어 옆구릴 가른다.
조장으로 일하고 있는 신연숙(46.안기동)씨는 "처음에는 손.발이 쑤시고 결렸는데 숙달되면 다 괜찮아진다"고 초보 일꾼을 위로하면서 "한번에 쭉 갈라야 된다"며 가르쳐준다.
공장장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간잽이 생활을 하면서 첨에는 칼질조차 못했니더"라며 "근 1년을 고등어 가시에 찔리고 칼에 베어 손이 하루도 성하지 못했다"라 했다.
배를 가른 고등어를 흐르는 맑은 물로 깨끗하게 씻어내고 핏물을 완전히 제거한다.
이 곳에서는 지하에서 끌어 올린 물로 씻어낸다.
그 다음 공정은 가장 중요한 습식염장(침전염장)이다.
죽염과 전라도 서해에서 생산해 낸 최고품질의 천일염으로 공장장 이씨가 염도를 맞춘 소금물에 고등어를 담가 2시간 이상을 염장한다.
이 과정이 염장하기다.
간잽이 이동삼씨가 자랑하는 비장의 솜씨도 이곳에 숨어있다.
이씨는 염도측정기 없이 입맛으로 짠맛을 맞춘다.
또한 고등어 배 속에 굵은 소금으로 염장지르는 작업도 순전히 손끝의 경험으로 한다.
다음은 '물빼기'. 자체 건조대에서 30여분간 물기를 제거한다.
그 후 숙성고에서 24시간 숙성시켜 소금기가 고루 배게 한 다음 포장, 완제품을 만들어 낸다.
▨"불우이웃과 함께"
오후 5시 공장에서 분주하게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2층 휴게실로 모여든다.
1시간 동안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찜질방식으로 만든 휴게실에는 대형 TV와 소파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이 곳에서 아주머니들의 간고등어 예찬이 쏟아진다.
한 아주머니는 "거의 매일 집에 갈 때는 간고등어 한손씩 가지고 간다"며 "반품이나 불량품이지만 먹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한달에 한 번씩 장애인시설이나 시내 노인회관 등으로 간고등어 수백여 손이 배달된다"며 "지역 특산품으로 전국을 휩쓸었으니 불우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어야 되잖아요"라고 강조한다.
초창기 창업때부터 함께 했던 양피난(54.여)과장은 "바다에서 나는 고등어에 염장지르고 날개를 달아 전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게 하는 게 우리시더"라며 "가격이 부담없고 맛도 뛰어나 도시민들도 좋아하고 있다"고 자랑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희소식은 설 명절이 끝나면 주5일제 근무를 한다는 것과 45년 간잽이로 한우물을 판 이동삼 공장장이 머잖아 전통염장기술로 경북도 기능보유자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다.
"한 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아주머니들이 부르는 대중가요의 정겨움을 뒤로 하고 작업장을 빠져 나왔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얼마나 큰 일을 만들어 내는가를 새삼 확인한 하루였다.
(주)안동간고등어=054)853-0545.
안동.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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