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광효 기자의'오부자 공방' 체험

"오묘한 징소리 하루만에 어찌 안다고..."

'오부자 공방.'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정장농공단지 안에 터를 잡은 이곳에선 우리의 전통악기인 징과 꽹과리를 만든다. 한국의 소리를 만드는 대표적인 곳인 셈. 오씨 성을 가진 부자(富者)가 경영하는 공방이라고 생각하면 성급하다. 이곳은 아버지와 네 아들이 전통 맥을 이어가는 공방이라서 '오부자 공방(五父子 工房)'이라고 부른다.

장마가 잠깐 그친 틈을 타 오부자공방을 찾았다. 공방 체험을 위해서다. 공방장은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이용구(69'징장)씨. 그러나 점식'점술'성술'경동 네형제와 며느리까지 함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 공방은 이용구씨와 함께 넷째 아들인 경동(39)씨, 며느리 김순영(34)씨가 운영하고 있다. 첫째 아들 점식(47)씨와 셋째 아들 성술(42)씨는 거창읍에서 북과 장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있고 둘째 아들인 점술(45)씨는 서울에서 '오부자상사'를 열어 전통악기를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오전 9시. 공방 앞뜰에 들어서자 벌써 징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흥겹다. 때로는 가슴 속까지 울리는 메아리로, 때로는 소리를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격정의 소리다. 악기의 울음잡기를 위해 토해내는 소리들이다.

"작업 공정이 험한 만큼 이런 작업복을 입어야 일이 손에 잡힙니다." 막내 며느리 김순영씨가 땀내가 풍기고 시커멓게 때가 묻은 작업복 한벌을 건넨다. 그리곤 무안한듯 웃음짓는다.

"하루 체험으로 오묘한 소리를 알기나 하겠냐"던 공방장 이용구씨는 "그래도 멀리까지 오셨으니 일하는 맛이라도 보고 가라"고 선뜻 받아준다. 이젠 넷째 아들 경동씨 차례. 작업공정을 일일이 설명해주던 경동씨는 험한 작업인 만큼 "안전에 주의할 것"을 새삼 당부한다.

이곳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힘든 작업은 현대식 시설로 교체했다. 압연기 등 대량생산을 위한 설비까지 갖추고 있다.

유기의 주재료는 정확하게 78%의 구리와 22%의 주석을 합금한 것이다. 이후 10여 단계를 거쳐야 완성품이 탄생한다.

첫 공정은 화덕에 불을 지펴 도가니를 달군 다음 동과 주석을 넣어 녹인 방짜쇳물을 퍼서 쇠판이나 석판에 부어 바디기를 만든다. 그러나 이날은 주조를 하지 않는 날이란다. 아쉽지만 이 과정은 체험도 견학도 할 수가 없다.

바디기는 압연기를 이용해 가로 세로로 적당히 넓힌다. 이것이 뉘핌질 과정. 또 돋움질과 싸개질 및 부질이라는 과정을 거쳐 형태가 완성된다. 공정 곳곳마다 옛 이름을 붙여 생소하다. 다음에는 쇠를 적당하게 달구는 담금질로 강도와 유연성을 높인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공정은 징의 소리를 잡는 풋(초)울음잡기로 중요하지만 재미있는 공정이기도 하다. 일정한 간격과 정확한 다듬질로 점차적으로 징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40여년 경력의 서영오(64)씨가 도맡아 하고 있다. 징을 만드는 것인지 망가뜨리는 것인지 어설픈 솜씨로 뻘뻘 땀흘리며 망치질하고 있는 걸 보더니 싱긋이 웃기만 한다.

종일토록 두드리다 보니 직접 만든 징에서도 그럴듯한 소리가 난다. 사실은 경동씨가 제대로 된 소리를 잡아준 것이다.

다음 과정은 가질이라는 공정으로 징의 모양새를 다듬고, 상사(줄무늬)를 새겨 넣는다. 징의 뒷면을 곱게 깎아내고 안쪽 면도 깎음질한다. 안쪽 면을 깎을 때는 제작자와 공방을 표시하는 상호 또는 사인형식으로 문양을 새긴다.

장인들끼리는 안쪽 면을 들여다보면 누가, 어느 공방에서 만든 것인지를 금방 알아차린다. 그래서 하루종일 체험하며 직접 만든 징에는 오부자 공방 사인을 쓸 수 없단다. 어쩔 수 없이 직접 사인을 하고 광택 연마작업이 끝나는 대로 기념으로 구입키로 약속했다.

이 모든 공정을 거친 징은 다시 재울음잡기를 해야 완성된다. 이 과정에선 반드시 대장(大匠)이라고도 하는 대정이(징꾼 최고의 호칭) 이용구씨가 울음소리를 바로잡아 출고한다.

한편 오부자 공방에서는 작업장 옆 전통 가옥에 옛 모습 그대로의 유기 제작과정을 재현, 오는 8월 6일부터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체험학습장을 개관한다.

6명이 1개조를 이뤄 신청이 가능하며, 복장은 물론 모든 과정들을 현대식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따르며, 무형문화재 징장 이용구씨가 직접 지도를 하게 된다.

연락처055)943-7956.

거창'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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