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루라도 제대로 일해봤으면…"

새벽 인력시장 무너졌다

29일 새벽, 서구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에서 만난 김모(48)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새벽 4시부터 인력시장에 나와 훤하게 날이 밝을 때까지 온몸을 떨고 있지만, 일주일째 공쳤다고 한다. 김씨의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내일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던 새벽 인력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일자리가 급작스레 줄어든 데다 수수료를 챙기는 인력회사들이 생겨나면서 '인력 시장'은 제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특히 50대 이상 노동자나 초보들에게 새벽 인력시장은 막연한 기다림의 장소가 됐다.

▨무너지는 새벽 인력시장

얼마 전만 해도 대구의 대표적 새벽 인력시장이었던 북비산 네거리. 하지만 최근엔 일용직 노동자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29일 새벽 이곳을 찾은 노동자는 50명 안팎으로 예전에 비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 그렇다고 전체 일용직 노동자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새벽 인력시장이 더 이상 일거리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길을 끊었을 뿐이다. 한때 장작불을 지펴놓고 100여명 이상 모여있던 서구 만평네거리와 안지랑네거리 인력시장도 마찬가지다.

요즘들어 새벽 인력시장은 인력을 업주에게 소개해 주고 근로자로부터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사설 인력개발회사에 그 기능을 점점 빼앗기고 있다. 인터넷 인력시장도 새벽 시장의 위축을 부채질하고 있다.

오전 6시를 넘기면서 간간이 공사장으로 향하는 차량이 왔지만 선택(?)받은 몇 명만 가방을 들고 차량에 올라탈 뿐 나머지는 그저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재수 좋구만. 저긴 10만원짜린데…." 불길을 쬐던 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씨라고만 밝힌 그는 "조장들을 알지 못하면 일자리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새벽에 나와 있는 노동자 중 상당수는 이미 일자리를 확보해 놓고 그저 차를 타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예전처럼 '몸값'을 부르고 흥정을 하는 시장 기능은 온데간데없고, 차량 대기소가 돼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녘에 수십명이 모여있는 이유는 '조장'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그나마 부지런히 나와야 갑작스레 생기는 '빈자리'에 끼일 수 있기 때문.

▨하루라도 제대로 일해봤으면…

가뭄에 콩나듯 인부를 구하는 차량이 한 번 오면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고함소리가 오가고 심지어 몸싸움도 비일비재하다. 7만원을 받기로 하고 차에 올라타는 노동자 뒤편에서 "나는 6만원만 받겠다"며 딴죽을 걸어 결국 둘 다 공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구 안지랑네거리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는 "겨울로 접어들면서 건축 공사장은 엄두도 못낸다"며 "밭에 거름주기, 상여지기 등 닥치는 대로 떠맡고 본다"고 했다. 일자리가 줄면서 일급도 1만원 정도 떨어졌다. 용접, 목수 등 전문인력 일당은 10만원선. 하지만 이마저도 안주면 그만이다.

대구 일일취업센터 문성윤 담당은 "하루 90여명이 찾아오지만 10여명만이 일거리를 구한다"며 "새벽 인력시장의 주요 수요처였던 건설현장에서 이들을 꺼리는 탓에 일감이 더 줄고 있다"고 했다.

건설업체의 경우 경기침체로 대기하고 있는 인력이 남아도는 데다, 인력을 알선해주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을 경우 번거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에 인력시장 채용을 꺼리고 있다.

건설업체 현장소장 김모씨는 "새벽 인력시장에 나오는 일용직의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안전수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며 "필요한 인력은 거의 용역회사를 통해 충원한다"고 했다.

오전 8시를 넘기자 인력시장 사람들은 축 처진 어깨에 작업가방을 둘러메고 하나 둘씩 사라졌다. 연신 담배를 빼어물던 50대 초반의 노동자는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사진:29일 새벽 북비산네거리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인력시장이 서길 기다리며 불을 쬐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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