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어느 평자에 따르면 지상에서 가장 난해한 책이 하나 있다.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5년 파리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철학자 들뢰즈가 미친 파장은 어머어마하다.
푸코가 21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거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국가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 1968년에 나온 '차이와 반복', 이 책은 그러면 도대체 뭘까? 600쪽이 넘는 책을 원고지 5장에 응축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강도(强度)니 차이(差異)니 어려운 말들을 쓰지만 필자가 이 책을 읽고 필이 꽂힌 부분을 통해 우리 현실을 사유할 수 있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안다는 것과 배움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배우게 될 것인지를 미리 알 길은 없다… 보물들을 찾기 위한 방법은 없고 게다가 배우기 위해 따라야 할 방법은 더더욱 없다.
있는 것은 다만 개인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과격한 훈련, 어떤 도야나 파이데이아 뿐이다."
정보와 지식의 차이, 더 나아가 지식과 배움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이 대목은 우리의 죽은 교육현장에 큰 교훈을 준다.
전인교육이 감성, 육체, 이성을 두루 갖춘 개인을 길러내는 것이지만 교복을 입는 순간 감성과 이성이 죽고 숫자가 지배하는 우리 교육이 바로 전인교육을 죽인 당사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학교에서 배운 정보를 지식으로 오해하고 있고 그 지식의 양을 배움으로 착각하는 교육, 보물을 찾는 방법을 일러주고 그것도 모자라 성형수술까지 해주는 교육이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게 될지 미리 알 길은 없는데도 길과 방법을 소상하게 가르쳐주고 지정해주는 우리 교육에는 들뢰즈에 따르면, 사고의 과격한 훈련 혹은 사유의 폭력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조금만 어려워도 '머리에 쥐가 난다'고 난리치는 세태다.
머리에 쥐나는 훈련과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주지 않은 탓일까? 들뢰즈가 "배움은 무지에서 앎으로 이르는 그 활력찬 이행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며 과정 또한 출석시수로 숫자화하는 교육과정이라면 '과정'이란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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