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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 넘치는 구미 '인의동 경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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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철인 요즘 매일 아침 시간에 구미시 인의동 경로당에 마련된 '명륜교실'에서는 30여 명 학동들의 천자문 외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구미시 인의동 경로당의 어르신들이 이번 겨울방학과 함께 개강한 '명륜교실'의 수업시간. 매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손자·손녀들을 대상으로 사자소학(四子小學), 사자일언(四子一言) 등 과목을 가르친다.

"한자(漢字)는 빨리 쓰려고 하다보면 획순이 틀리거나 획수가 맞지 않습니다.

자, 천천히 한 획 한 획 정성을 기울여 써 보세요."

명륜교실의 훈장 선생님은 이곳 경로당의 회장직을 8년째 맡고 있는 정수만(88) 할아버지. 정 훈장은 올해 딱 미수(米壽)를 맞는 여든여덟의 나이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학동들의 흐트러진 수업자세를 일순간에 휘어잡는다.

때로는 단순한 인사말 수준을 뛰어넘는 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를 경로당 회원들에게 가르친다.

일제 강점기 대구 농림학교를 나와 중국·일본으로 유학을 해 그때 실력이 남아 있는 것.

정 훈장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늦잠 자지 마라,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하지 마라'는 등 부모의 잔소리에서 해방된 기분으로 수업에 임한다"면서 "학동들이 한자 급수 자격증을 따고 자랑을 할때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경로당 감사인 김창형(80) 할아버지는 "손자·손녀뻘인 학동들이 한자를 배운답시고 경로당을 들락날락거리는 것만 해도 예절교육이 저절로 이뤄지게 되는 셈"이라면서 "할아버지들도 귀여운 학동들을 마치 친손자인 양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고 말했다.

정 훈장이 이끄는 인의동 경로당의 회원 수는 103명. 회원 가운데 80대 이상 노인들이 태반으로 60, 70대는 그저 '담배 심부름'이나 해야 할 정도로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철저하다.

특히 이곳 인의동 경로당의 회원들은 장기나 화투, 바둑 등으로 소일하거나 모여앉아 남의 집 잘못을 두고 험담하는 노인네들이 아니라 각종 재활용품을 수집해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실버'들이다.

주로 60, 70대 회원들로 구성된 재활용품 수집단은 5명씩 조를 짜 매일 오전 6시부터 리어커를 끌고 거리를 나선다.

주택가에 밤새 버려 놓은 종이상자, 빈병, 헌옷, 가전용품 등 재활용품을 수집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른 새벽 방한복과 털모자를 쓴 채 나선다.

차갑지만 싱싱한 아침 공기를 마실 수 있어 더 없이 좋단다.

이들은 재활용품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 버려진 오물과 쓰레기를 청소하거나 밤새 술을 마시고 싸우는 사람들을 뜯어 말리고, 술에 만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일 등 방범순찰 활동도 이들의 몫이다.

회원인 정임만(84) 할아버지는 "처음엔 재활용품을 수집하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다녀보면 사람들이 넝마주이쯤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어. 주민들이 스스로 집에서 빈병 등 재활용품을 갖다 줄 정도"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100kg씩의 재활용품을 수집해 한 달에 대충 60만~70만 원 정도 번다고 한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수익금은 800여만 원.

이 돈으로 회원들의 개인용돈, 경로당의 겨울 난방비, 명륜교실에 다니는 학동들의 간식비 등에 보탠다.

좀 더 큰 돈이 되면 회원들의 봄·가을에 걸친 단체관광과 여기다 해마다 동네의 불우이웃들도 잊지 않고 찾는다.

경로당 고성규(74) 총무는 "가능하면 자식들이나 독지가, 기관 등에 손을 벌리지 않고 스스로 경로당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전체 운영비 2천200여만 원 가운데 자체수입 충당률이 60%(1천400만 원)가 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미시 인의동 경로당의 정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지난해 경북도로부터 최우수 모범경로당으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대한노인회,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삼일장학재단 등 기관으로부터 각각 지역사회 봉사상, 멋진 노인상, 삼일문화상을 받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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