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윤미전 作 '너를 보낸다'

너를 보낸다

- 병술년(丙戌年)을 보내며

윤 미 전

어디로 가는 것인지

뒤돌아 볼 새 없이 소나기 지나가듯

또 한해가 돌아앉을 때

발등 적시며 달려온 어제가

잊을 건 빨리 잊으라며 싱긋 미소 짓는다

팽팽한 보름달이

부풀어오른 제몸 어쩌지 못해

스스로를 비워내는 것처럼

삼백 예순 닷샛날 키워왔듯이 한해가

새옷 갈아입는 다른 한해에게

악수 청하며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등잔불이 온 힘 다해 마지막 불꽃

밀어올리며 장엄한 최후를 맞고 있다

자, 이제 떠나자

적멸을 지나 새벽이 천지사방 뻗어올 저곳으로

자, 이제 작별하자

지친 마음들 토닥이며

환하게 손 내미는 저곳으로

한 세월 휘돌아 문득 마주치면 색 바랜 사진처럼

서로 기억할 수 있을까

병술년, 너를 보낸다

저물고 있는 병술년, 돌아보면 그 어느 날인들 힘들지 않는 날이 있었던가. 최선을 다한 삶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참으로 '발등 적시며 달려온 날'들이다. 아쉬움도 많다. 회오(悔悟)에 젖게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저무는 병술년 앞에 미련이나 허무감에 마냥 빠져서는 안 된다. 이 해가 가면 다시 '환하게 손내미는' 새해, 정해년이 오고 있지 않는가. 밝아오는 정해년, '적멸을 지나 새벽이 천지사방 뻗어올 저곳'을 향해야 하리.

보내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만남의 의식이다. 세모(歲暮)는 새해를 준비하는 설레는 시간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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