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요동을 친다. 난데없는 신정아 변양균 스캔들로 청와대도 이미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정윤재 비서관 비리까지 합치면 이제 더 이상 청와대의 권위는 따로 세울 구석이 없을 정도이다. 정권 말기가 되면 예외없이 드러나는 공직자들의 비리와 스캔들은 우리 정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려 했던 정치적 도덕성은 청와대 공직자로 인해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권력의 속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쓴 소리하는 사람을 굳이 중용해야 하는 것이다. 코드 정치로 시작한 정권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씁쓸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코드 정치인들이 크게 잃은 것은 없다. 그들은 권력을 누릴 대로 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직사회이다. 처음 우리는 참여정부가 과거 정부와는 달리 공무원의 중립적 능력을 존중하는 민주 정부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현 정권 역시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실한 정치적 기반위에서 피해자 의식을 가진 사람끼리 코드 정치를 하다 보니, 자신의 정치적 원군을 공직사회에서 조달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원론적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우리 행정학자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적 능력에 따른 행정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되고나면 승진을 위한 줄서기가 횡행하는 것이 우리나라 행정의 현실이다.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이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 기관장, 자치단체장들의 정치적 행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관장에 대한 충성이 모든 가치에 앞서는 사회가 한국의 공직사회인 것이다. 이래가지고서는 시민을 위한 행정이 될 수가 없다. 정권 말기가 되니, 중앙행정 부서의 고위 공무원들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차기 정부의 실력자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등 거의 준(準)정치인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지금 상당수의 중앙 공무원들은 자기 부처가 어떻게 구조 조정 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 조직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비한 자체 준비를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교수들이 해당 부서의 용역을 받고 부처 존속의 정당성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매우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정부 용역'에 지식인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중앙행정부서는 부처 존립을 위한 정부 용역에 반드시 자기 부서 직원을 연구자로 참여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 공무원이 참여한 연구 용역에서 누가 해당 행정부서의 구조 개편을 말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무원들은 혁신과 균형발전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내 몰렸다. 인사과의 이름도 혁신인사과로 바꾸고, 지방자치 단체 마다 균형발전발협의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였다. 고위공무원 개방 임용제는 고위직 공무원을 열심히 뛰도록 만들겠다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아마추어 인물로 거의 채워졌다. 공직사회에 정치적 후배를 심어 놓겠다는 시대착오적 정치적 후원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착실하게 근무하고자 하는 공무원이 배겨나기 어렵다. 충성 코드가 앞서는 세상에선 '착실하고 성실한자'는 고지식한자로 통한다.
청와대와 중앙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서 공직사회는 더욱 더 심각한 '도덕적 태만'에 빠지고 있는 가운데, 고위 공무원의 부적절한 처신은 하위 공무원에게 편안한 도덕적 도피처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변양균, 정윤재 등 청와대 핵심 측근이 해당 사건에 대한 진실을 지속적으로 왜곡시킬 경우 공직 사회 윤리 기강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공무원들도 안전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대선 후보 지원에 촉각을 세운 단체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지방공무원의 정치적 동원이 우려된다. 이미 상당수의 지방의원들이 특정 대선 후보 지지를 표명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지방 공직사회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는 지방의회의 존재 가치가 의심되는 국면이다. 후진 지역일수록 정치가 흔들리면 공무원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대선 과정이 치열해 지면서 정치가의 위신이 추락하고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가운데 직업공무원들이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개발하여 진화하고 있다. 선진국 행정과는 매우 거리가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전영평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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