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소매점들에 상권을 뺏기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정육점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요.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대형소매점들이 거대 유통망을 앞세워 대거 지역에 진출하면서 재래시장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정육점들이 몰락하고 있다. 휴·폐업이 속출하고 영업을 하는 곳도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어려움의 현장
정육점들의 모임인 대구축산기업조합에 따르면 현재 800여 개의 정육점이 회원업체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 정상영업을 하는 곳은 600여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200여 곳은 폐업이나 개점휴업 상태다. 정육점 대부분이 위치한 재래시장의 상권 위축으로 장사가 너무 안되기 때문.
1999년 1천500여명에 이르렀던 회원수가 10년도 안돼 절반 이하로 줄었다. 통상 매년 문을 닫는 업소들이 200개소 이하였지만 홈플러스 대구점이 97년 개점하면서 이듬해에 307곳으로 급증했다. 이마트 성서점이 개점한 1999년엔 387개의 정육점이 문을 닫았다. 이 후 대형소매점들의 개점이 잇따르기 시작한 2001년엔 무려 523곳이 폐업했다.
길운봉 대구축산기업조합상무는 "축산물은 생물이라 잘 팔리지 않을 경우 손실이 급격히 늘어 소규모 정육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문시장에서 '큰장식육점'을 운영하는 송영무(63)씨는 10㎡ 크기의 가게에서 한우와 국산 돼지고기만 판매하고 있다. 규모가 작다보니 별도의 진열장을 갖추기 어려워 육우나 수입산은 아예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서민들은 육우나 수입쇠고기를 찾는데 그에 맞는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 그는 "예전엔 한 달에 소 2마리 분량을 팔았는데 몇 년 전부터 절반으로 줄었지만 배운 것이 이것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가게임대료, 전기료 등 각종 부담이 만만찮아 종업원을 따로 두지 않고 아들과 함께 장사를 한다.
◆생존 몸부림
칠성시장의 한 정육점 주인은 갈수록 매출이 줄어들자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 없다는 생각에 영업사원 1명을 고용했다. 대규모 식당이나 기업 구내식당을 상대로 '무작정 판촉'에 나서게 했다. 매출 증대를 위해 국내산, 수입산 가리지 않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대형소매점보다 보통 15%정도 싸게 해서 무조건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뛰고 있다.
팔달신시장에서 '동남축산'을 운영하는 차점용씨도 이마트 비산점, 홈플러스 대구점, 이마트 칠성점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급감하자 학교급식, 병원, 기업 구내식당 등 판매처 다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차씨는 기회가 되면 대형소매점 영향을 덜 받는 곳에서 전문매장을 개점, 차별화된 영업전략으로 정육점을 운영할 포부를 갖고 있다.
◆도축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정육점들의 급격한 감소는 대구시 축산물도매시장 도매법인인 신흥산업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10년전만해도 소의 경우 하루 작업량이 100여 마리에 이르렀으나 현재 30여 마리로 줄었다. 물론 농협 고령축산물공판장으로 수요가 분산된 측면도 있지만 시중 정육점들이 급감한 탓이 더 크다. 돼지의 경우 요즘 하루 작업량 700여 마리 가운데 정육점으로 들어가는 분량은 150여 마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가공용으로 공급한다.
신흥산업은 자구책으로 대규모 육가공공장 등 축산물 수요 확보를 위해 영업망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유통망을 가진 대형소매점들은 중앙집배센터를 통해 축산물을 조달하기 때문에 지역 도매시장의 활성화엔 한계가 있다.
권오영 영업부장은 "대형소매점들이 대구에서 작업한 축산물을 구입할 경우 지역 축산물도매시장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를 제도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대구시가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민병곤기자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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