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강규호(42)씨와 송옥분(39·여)씨는 2007년 6월 한국땅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한국행에 나선지 여섯달 만이었다. 둘은 한국행 탈출길에서 처음 만났다. 험한 고비를 함께 넘으면서 통성명을 했고, 같은 고향(함경북도 청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둘은 수십 시간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고, 악어가 우글대는 강을 작은 배로 건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함께 희망을 꿈꿨다. 한국에 도착하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그들을 견딜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꿈 같았던 한국 생활은 고작 1년 반 만에 산산조각났다. 규호씨가 지난달 말 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지난 3일 포항에서 만난 옥분씨는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남편이 입원해 있는 서울의 병원에서 전화를 받고 갑작스레 상경을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옥분씨는 현재 임신 9개월로 다음달 2일 출산 예정이다. 차를 타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멀미가 심하지만 지금은 염려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부신에서 시작된 암이 폐와 콩팥, 지라 등 네 곳으로 전이됐으며, 4기까지 진행돼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왔다. 옥분씨는 "포항으로 내려와 항암치료를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고작 몇 개월이나 견딜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옥분씨는 2001년 북한을 탈출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안의 감시를 피해가며 살아야 하는 중국생활은 고역이었다.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히 살아보자"는 생각에 옥분씨는 중국인 남편과 결혼해 낳은 일곱살 아이 하나를 남겨둔 채 한국행을 감행했다. 남편 규호씨 역시 옥분씨와 비슷한 시기에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벌목공과 노래방 웨이터로 6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갔다.
한국으로 와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나와 포항에 정착한 뒤 1년이 채 되지 않아 아기가 생겼다. 지난해 7월이었다. 12월에는 합동결혼식을 통해 드디어 하얀 면사포도 썼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봤지만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직하기는 어려웠다. 규호씨는 하루 일당 7만원짜리 공사판 노동일을 전전했고, 옥분씨는 식당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돈을 벌었지만 "그만해도 정말 남부러울 것 없는 재미난 삶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명치끝이 아파 숨을 못 쉬겠다"며 소화제를 사먹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남편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했고, 그 길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진단 결과 '암 말기'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혹시나 하는 희망에 서울까지 가서 수술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허사였다. 병원을 찾은 지 고작 2주 만이었다.
옥분씨는 "처음에 남편이 '통증이 있다'고 했을 때 병원만 가봤어도 이렇게 속절없이 손놓고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가 처음 통증을 호소했던 것은 바로 결혼식을 올렸던 지난해 연말이었다. 그날도 "가슴이 아파 숨쉬기가 곤란하다"고 식은땀을 흘려댔지만 몇십분 지나지 않아 괜찮아지는 것을 보면서 "그저 결혼식을 올린다는 불안감에 그러겠지"하고 무심하게 넘긴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했다.
옥분씨는 너무나 큰 절망 앞에 아예 넋을 놓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남편의 병원비는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이며, 아기는 또 어떻게 혼자 키울 것인가. 옥분씨는 "완쾌되지 않고 평생 병원 신세를 져도 좋으니 목숨만 붙어 있으면 좋겠다"고 울었다. "그 사람 없으면 나는 살수가 없슴다. 세상에 아기랑 달랑 둘만 남겨지게 됐는데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란 말입니까" 또 한번 생의 커다란 고개를 넘고 있는 옥분씨는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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