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세월] 50년간 현역활동 사진작가 강상규씨

"자연은 그대론데 세월따라 내가 변해 한평생 늘 다른 사진을 찍은 셈이

1995년 작품 \
1995년 작품 \'천지창조\' 촬영 당시 뉴질랜드 마운틴 쿡에서. 강상규씨 제공

사진깨나 찍는 사람들은 사진작가 강상규(74·전 대구미래대 교수·현 동제 미술관 대표)를 안다. 대구의 현역 작가 중에 가장 오래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다. 1960년 24세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 50년 동안 주로 풍경을 찍었다. 자연이란 게 어제와 오늘 다를 게 없고, 작년과 올해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강상규는 그 오랜 세월 늘 다른 사진을 찍었다고 회고한다. 자연은 거기 그대로 있었으나, 세월 따라 그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하면 그가 보는 세상 역시 변하는 법이다. 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은, 길가의 풀잎 한 장에서도 한 세상이 열리고 닫힘을 보는 것이다.

풍경 사진을 찍는 작가니 늘 집밖으로 돌았다. 비 오는 날엔 비가 와서, 눈 오는 날엔 눈이 와서, 바람 부는 날엔 나뭇가지가 흔들리니 나가야 했다. 날씨에 따라 하늘과 땅, 산과 강, 나무와 풀은 다른 색깔을 띤다. 하늘이 맑으면 맑아서, 꽃이 피면 꽃이 피었다고, 잎이 지면 또 낙엽을 찍는다며 밖으로 나갔다.

부인은 그런 그를 못마땅해 했다. 그날이 그날인 날들, 작년에도 피고 올해도 피는 꽃을 작년에도 담고 올해도 담을 까닭이 무엇인가. 꽃피는 봄날 "네 남편, 오늘 모델 아가씨와 수성못 둑에서 사진 찍더라"는 친구의 전화도 부아를 돋웠다.

"아내에게 미안했지요. 나야 나 좋아서 사진을 찍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재미없었겠지요. 나중에는 아내도 포기하는 것 같았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불화만 생길 뿐이니,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지요."

작가 강상규는 가정과 예술을 동시에 챙기기는 어렵다고 했다. 일상인이 보는 세상과 예술인이 보는 세상은 다르고, 일상과 예술은 그래서 불화한다.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예술가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을 강상규 역시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강상규 작가는 대구미래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2001년 정년 퇴직했다. 1980년 대구경북 최초로 대학에 사진학과를 창설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대, 신구전문대(신구대학)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였다.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짜고 교수법도 개발했다. 한국 사진교육의 초석을 다진 셈이다. 초대 학과장으로 사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15년간 소장을 역임했고, 사진 논문집도 5권이나 발행했다. 정년퇴직 뒤에도 5년 동안 명예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가 처음 샀던 카메라는 아사히 펜탁스로 1960년 대구 중앙통에 있던 김진욱 사진기점에서 구입했다. 당시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월급으로도 사기 힘들 만큼 비쌌다. 카메라 메고 거리에 나서면 모두들 신기한 듯 구경했다. 재산목록 1호로 집을, 2호로 아내, 카메라를 3호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운 좋게 사진작가이자 한국 최초의 사진 평론가 구왕삼 선생을 만난 것이 본격적으로 사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였다. 구왕삼 선생은 당시 사진평론 1인자로 우리나라에 사진 리얼리즘을 도입하고 전파한 사람이다. 구왕삼 선생은 대구 사진의 뿌리이자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최계복 선생과 라이벌이었는데, 덕분에 대구 사진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됐다. 걸출한 두 사람 덕분에 대구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사진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하루 세끼 밥도 먹기 힘든 시절, 이미 대구에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진 서클이 3개나 있었다. 사우회, 사광회, 신사회였다.

"사진은 길 위의 예술입니다. 작가는 걸어 다녀야 해요. 요즘 작가들은 자동차로 목적지까지 이동한 다음 거기서 찍는 경우가 많아요. 엇비슷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죠.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서 뜻하지 않는 소재를 발견할 수 있어요. 사진은 그렇게 찍어야 합니다."

옛날엔 거의 모든 작가들이 걸어 다녔다. 대구시내 중심에서 수성못, 동촌유원지까지는 무시로 걸어 다녔다. 당시엔 어디나 벌판이었는데, 그 벌판에 풍경이 있었다. 비교적 먼 화원유원지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근처에서 내려서 그 일대를 종일 걸어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작가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좋은 작품은 걸어 다닐 때 나옵니다. 요즘은 자동차 때문에 사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예술은 남들과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작가들이 명소에 집중하니 그 사진이 그 사진 같아 보입니다." ☞ 11일자 '사람과 세월'에 계속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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