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눈엔 세종시만 보여 이쯤되면 지방은 버린 셈"

대구 첨단의료단지 추진단장의 격정 토로

"정부의 눈엔 세종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쯤되면 지방과는 함께 살기 싫다는 얘기로만 들려요."

7일 오후 삼성에 이어 SK, 한화까지 잇달아 세종시에 입주할 방침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상길 대구시 첨단의료복합단지 추진단장의 넋두리다.

그는 정부의 '세종시 몰아주기'에 강경한 발언을 계속 토해냈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라면 정부고위층이 가만히 있어야 정상인데 자꾸 '세종시에 어떤 기업을 넣어라', '해외 기업을 위해 땅을 비워놔라'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기업이 이 말을 거스르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겠어요."

대구시는 지난해 7월부터 삼성과 LED 및 바이오 분야 신사업과 관련해 마라톤 협상을 벌여왔다. 이 단장은 "서울 삼성 본사 정문 앞에서 실무자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1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보통이었다"고 했다. 국회의원, 정부 부처 공무원, 기업인 등 이 단장은 그동안 쌓아두었던 인맥을 총동원해 '삼성 모셔오기'에 읍소했다. "삼성만 모셔올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각오였어요." 그의 서울행은 지난해 연말쯤 더 잦아졌다. 10여년 전 삼성상용차 퇴출 이후 경색됐던 '대구-삼성'의 관계가 눈녹듯 조금씩 풀어졌기 때문이다.

또 대구시가 추진 중인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사업'과도 맞물려 이 단장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지난 연말엔 상당부분 합의선까지 다다랐다고 했다. 특히 삼성이 지난해 12월 사장단 인사에서 김순택 삼성SDI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삼성전자의 신사업 지원추진단을 맡게 하면서 날개를 단 격이 됐다. 김순택 부회장은 경북고와 경북대 경제학과를 나온 대구사람이다. 이 단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대구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당시엔 일이 참 순조롭게 풀린다고 생각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노력도 물거품이 될 위기다. 게다가 SK와도 1년 동안 물밑작업을 벌어왔던 터라 이 단장의 허탈함을 더했다. 그는 "누구는 반기지도 않는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는데 세종시는 가만히 앉아서 정부가 준 '선물'을 날름 받아먹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밤잠도 설칠 정도"라고 했다.

다른 대구시 공무원은 "지역 국회의원들이라도 나서서 대구경북의 솔직한 형편을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친이(李)냐, 친박(朴)이냐 지금 이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지 않나요? 지역구 주민들의 미래가 산산조각날 판인데, 대통령을 설득시키지 못하겠다면 세종시 특별법이라도 막아야 합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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