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사진을 찍어온 작가 강상규(74 · 전 대구미래대 교수· 현 동제미술관 대표)의 데뷔작은 1963년 '동촌 강변의 연인'이었다. 동촌과 화원 유원지, 수성못은 당시 연인들의 훌륭한 데이트 장소였다. 자동차가 드문 시절이었고, 연인들은 걸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연인들뿐만 아니라 사진 작가들 역시 풍경 좋은 곳을 찾아다녔고, 그래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사진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동촌 강변에서 찍은 '연인 사진'으로 미국에서 열렸던 'US 국제 사진콘테스트'에서 6등 했다. 당시에는 국내에는 사진전이 거의 없었다. 작가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 열리는 국제 사진전을 통해 데뷔했다.
사진 예술은 돈이 많이 드는 분야다. 사진에 매료되고도 경제적인 이유로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해외 촬영을 한번 나가면 필름을 100롤 혹은 200롤을 가지고 나갔다. 게다가 작가들은 비싼 슬라이드 필름 중에서도 가장 고급 제품을 쓴다. 요즘 슬라이드 필름 한 롤은 1만원이다. 여행 비용이 200만원이라면 사진 재료 비용이 200만원이 든다. 100롤, 그러니까 3천600장을 찍어도 쓸 만한 사진은 5점이 고작이다. 게다가 촬영 여행은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관광지를 찍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를 빌려서 원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찍어야 한다. 여행 경비로 따지면 단체 여행에 비할 바가 아니다.
1960년대, 70년대에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사람은 무척 드물었다. 사진 작가들은 관광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진사가 아니라 산으로 들로, 바다로 찾아다녔고, 그래서 오해를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강상규씨는 동해안에서 사진을 찍다가 북한 간첩으로 오인 받아 여러 차례 경찰에 잡혀가 신문을 받기도 했다. 카메라 들고 어슬렁거리니 해안가 주민들이 신고를 했던 것이다. 충분히 설명을 하고 풀려나기는 했지만, 경찰들 역시 보통 사람이 하릴없이 카메라 들고다니며 이것저것 찍어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간첩은 아니지만, 뭔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나라 전체가 반공 이념으로 무장돼 있던 시절이었다. 공안 기관은 간첩을 구분하는 지침으로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신발에 흙이나 이슬이 묻어 있는 사람, 카메라를 들고 이런저런 사진을 목적 없이 찍는 사람 등'을 지목하곤 했다.
강상규 작가는 흑백 사진을 유난히 좋아한다.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는 흑백 사진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창작은 자연 그대로의 피사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작가가 흡수하고 자기화한 피사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려면 흑백 사진이 좋아요. 거칠게 말해 컬러 필름을 갖고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촬영밖에 없습니다."
강상규의 흑백 풍경 사진은 회화처럼 보인다. 그림이라고 오해할 만했다. 컬러 사진일지라도 색깔은 극도로 생략돼 있었고 이미지만 강하게 와 닿았다. 그가 변화무쌍한 날씨와 순간에 집착하고 흑백 필름을 고집하는 까닭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그의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피사체로서 사물이 아니라 강상규인 셈이다.
풍경 사진과 더불어 그가 신앙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도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신을 향한 인간의 기도(절규)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두려움, 겸손을 보여주는 행위다. 강상규씨는 그 모습이 인간의 본래 모습, 순수한 모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절, 성당,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기도하는 사람, 스님, 수녀, 신부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죽음에 관한 사진, 특히 상여 나가는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13년 전 발표한 연작 '천지창조'는 성서를 주제로, 세상의 창조와 인간의 원죄, 인간과 지구의 미래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뉴질랜드, 호주 등 20여개 국가를 방문했다. 혼돈의 세계에서 창조의 세계로, 그리고 발전과 자만의 세계, 징벌의 세계까지 표현한다.
동제미술관(대구시 달성군 가창댐 옆 오리마을)에서는 2월 17일까지 '강상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 그림처럼 묻어나는 사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053)767-0014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