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 사회를 뒤흔든 서독 적군파(赤軍派) '바더마인호프'단(團)의 여전사(女戰士) 울리케 마인호프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역사학자 레나테 리메트 교수의 보살핌을 받아 똑똑하고 다정다감한 소녀로 자랐고 저명한 신좌파 저널리스트가 됐다. 그녀는 이미 30대 초반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인생에서 바라는 것을 모두 얻었다. 남편, 일, 아이, 저택…. 이처럼 빛나던 저널리스트가 갑자기 테러리스트로 변해 국가의 공적 제1호가 된 까닭을 두고 최근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이순예)
서구 국가들은 테러리스트들이 대부분 못 배우고 가난하고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절망적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울리케 마인호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전적으로 오해다. 알 카에다의 1, 2인자 오사마 빈 라덴과 알자와히리는 각각 사우디 아라비아의 갑부'의사 출신이고, 9'11 테러를 벌인 모하메드 아타와 지아드 자하라는 각각 이집트 변호사의 아들과 레바논 고위 관리의 자식이다. 1970, 80년대의 전설적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은 아버지가 부유한 변호사였다. 우편폭탄테러로 미국 전역을 떨게 한 시어도어 카친스키도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버클리대 수학교수를 지냈다.
이 같은 현상은 시카고대 로버트 페이프 교수의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1980~2003년 사이 315건의 자살폭탄테러를 벌인 462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대부분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 출신이었다. 이들은 자폭테러를 자원하기 전까지 폭력 행위에 가담한 적도 없었다.
지난해 말 아프가니스탄 CIA기지 자폭테러의 범인 후맘 칼릴 아부물람 알발라위는 온건한 성격의 의사였으나 2008년 말 이스라엘에 의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가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과격한 성향으로 변했다고 한다. 군사 작전에만 기대고 있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벽에 부딪히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쉬운 것 없는 사람들이 테러범으로 변신하는 동기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돈에서부터 정치적 신념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내 형제, 내 친구, 내 민족이 외세에 짓밟히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와 좌절은 특히 큰 동기로 작용한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제2, 제3의 알발라위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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