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세종시 수정안 관전법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고 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공자도 부국강병의 제일은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날 수령님(김일성 주석)께서는 늘 우리 인민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여야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아직 수령님의 이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백성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쌀밥에 고깃국'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시인한 것이다. 즉 핵무기를 개발해 강성대국, 군사대국의 자부심을 높였지만 인민들의 생활과 복지 없이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김 위원장마저 인민들의 복지에 새롭게 눈을 돌리듯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여여 간, 여야 간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민이식위천'에 대한 인식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수도분할과 다름없는 행정부처 이전은 행정비효율로 이어질 것이 뻔하고 그럴 경우 국가백년대계가 일그러질 것이라면서 세종시 조성 계획의 전면수정에 나섰다. 대신 그는 이 지역 사람들이 당장 먹고살 거리들을 마련해 주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대기업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세종시 문제를 세종시 지역과 충청권 주민들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는 잘못 꿰어진 단추지만 우리 사회의 원칙과 신뢰 및 화합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약속을 지켜야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측 모두 간과하는 것이 있다. 신뢰와 원칙이니, 효율과 비효율에 앞서 이 문제는 우리나라 혹은 우리 국민의 미래의 먹을거리와 직결돼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왜 세종시 수정안에 다른 지방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수도권과 충청권 외의 다른 지역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 제대로 쳐다보려고도 않는다.

세종시에 입주할 기업을 찾아내기 위해 총리까지 나서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구와 광주가 얼마나 허탈해하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내로라하는 지방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역정치권이 수년간 발로 뛰어다녀도 대기업의 지방국가공단 유치는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세종시에는 불과 몇달 사이에 삼성과 한화, 롯데 등의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입주하겠다고 한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이런 상황을 '南轅北轍'(남원북철: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향한다)이라고 할 것이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는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추진의 명분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재의 의석분포상 한나라당은 과반의석을 넘는 절대 다수당이지만 당내 역학구도상 세종시 수정안을 쉽사리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권 지도부가 당내 반대세력에 대한 설득은 하지 않은 채 민심호전을 통한 포위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당내 갈등을 격화시키는 전략으로 비친다. 국민여론에 호소하기 전에 먼저 당내 여론을 모으면서 단합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 노력이 부족하다면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여권의 의도는 순수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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