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제위기가 시작된 지도 1년 반 정도가 지나 이제 각국별 성적이 드러나고 있다. 금융부문이 붕괴된 아이슬란드 이외에도 그리스, 포르투갈 등 일부 유럽국가들은 치솟는 정부 부채와 금융 불안으로 2010년에도 경제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중국과 인도, 브라질, 호주 등에서는 이미 경기 회복세가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2010년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돼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승자와 그렇지 못한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승자에 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직 고용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고, 경기회복의 온기가 서민경제에까지 퍼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국내외 경제연구소에서 우리경제가 2010년에 4% 이상 성장하면서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장경제에서 주기적으로 위기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불황을 이기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으며, 생존한 기업들은 호황기에 크게 성장했다. 또한 격변기 이후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지역별로 이동한 예도 드물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잘 하면 이번 위기가 오히려 우리나라의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하던 것만 잘 하면 우리 경제가 선진국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전세계가 미래의 성장을 견인할 기술로 주목하고 있는 신에너지, 로봇, 바이오, 나노, 의료 등의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 대비 IT 분야의 기술격차는 3.8년에 불과하지만, 바이오 분야의 기술격차는 7.3년, 에너지'자원 분야는 6.1년, 나노'소재 분야는 6.4년, 의료 분야는 8.1년이다. 향후 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에서 우리 기술 수준이 크게 부족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 미래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R&D 투자에 2009년 보다 11% 증가한 13조7천억원을 배정해놓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도 R&D 투자를 대폭 늘려 이들 분야에서의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IT 분야에서 보유하고 있는 우수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미래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과거에도 우리가 좋은 환경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했던 적은 없었다. 언제나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한 상황을 극복해 가며 성장해 왔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생각해보면 늘 우리에게 부족한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지금의 우리 경제를 만들었다. 지금이야말로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될 때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해외 언론을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이번 경제 위기의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마구 쏟아냈었다.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고, 해외 신용평가사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했다. 그들 신용평가사들은 1997년 IMF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체력은 외국 언론의 생각보다 훨씬 튼튼했다. 가장 성공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되레 부각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이번에 잘 극복했다고 해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언젠가 느닷없이 다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떤 형태로 오게 될 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그 때 우리의 운명은 지금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는 지에 달려 있다.
김광수 나이스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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