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던 날, 나는 안식구에게 심사숙고해서 다듬은 '황금빛 인생 설계도'를 제시했다. '결혼을 원년으로 하고 1차 3개년계획에서 시작하여 14차 3개년계획까지 둘만의 인생 행복설계도'였다. 주 내용은 '아이는 국가방침에 따라 둘만 낳고…. 이쯤에 갈테니, 3년 후에 따라올 것….' 등 이었다. 쭉 훑어보던 아내의 답변은 "이런 거짓말 안 해도 좋고 그냥 나만 사랑해 주면 그걸로 족해요"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둘의 생활은 시작되었는데, 삶 속에는 의외의 복병이 많았다.
신혼 후 얼마 안 되어 금세 찾아온 문제는 두 사람의 의식의 차였다. 시골 출신인 나와 서울 출신인 안식구의 생각차는 예상외로 컸던 것이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면 음식을 풍성히 만들어 많이 남게 해서 흡족하게 해드리는 게 시골습관인데, 안식구는 꼭 알맞은 분량만을 만든다.
모자라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도무지 마음에 안 차는 것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트러블은 시작되었다. 또 교회에 가거나, 누구와 약속하면 으레 10분 정도는 늦는다. 아이가 울어 젖 좀 주라고 하면, 배가 안 고프니 좀 울어야 노래를 잘 한다면서 뜨개질을 한다든지…. 그럴 때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데, 이 '무너지다'는 일본어로 '무나시이'(むなしい)가 되는데, 이는 '허무하다'라는 뜻이다.
어쨌든 매사가 이런 식으로 부딪혀 갔다. 결혼 전에 '말괄량이 길들이기' 연극을 보고 여자는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참 잘못된 생각이었다.
20여년간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 완성된 그릇을 이제와서 고치려 하니 고쳐질 리가 만무하다. 더 무리하면 깨질 수밖에….
어떻게 할까? 깨든지, 아니면 내가 변하든지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하루는 나에게 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을 다 적어보았더니, 처녀총각 시절의 생활차에서 온 습관과 생활방식이 약간 다를 뿐, 그 밖에 식성, 취미, 느끼는 감성은 모두 비슷하고 게다가 나에게 없는 착한 심성, 남을 배려하는 태도, 나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등의 좋은 장점 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행동파로 약간 즉흥적이며 덤벙대는 나에게, 매사에 찬찬하고 사색적이며 나의 문제점을 슬쩍슬쩍 지적해주고 도와주는 그런 안식구가 아닌가?
'자칫 보배를 놓칠 뻔했군!' 그때부터 나는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꾸었다. 약속은 언제나 20분쯤 뒤로 하고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기다리고 있으면, 이번엔 반대로 안식구가 재촉을 한다. 늦었으니 빨리 가자고….
매사 연구하고 생각을 바꾸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느긋해지는 것을…. 그 후 둘의 생활은 현명하고 착한 처 덕분에 양떼가 한가로이 뛰노는 '초원의 집' 같은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생활이었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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