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베트남 여성 웬티사이문의 사연

낯선 땅 유일한 버팀목 남편이 쓰러졌다

김호진(46)씨는 갑작스런 대동맥박리로 새해 첫 출근날 지하철 역에서 쓰러졌다. 남편밖에 의지할 곳 없는 베트남인 아내 이현아(26)씨는 남편이 혹시나 잘못될까봐 연방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김호진(46)씨는 갑작스런 대동맥박리로 새해 첫 출근날 지하철 역에서 쓰러졌다. 남편밖에 의지할 곳 없는 베트남인 아내 이현아(26)씨는 남편이 혹시나 잘못될까봐 연방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저는 2005년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입니다. 베트남 이름은 웬티사이문(26), 한국 이름은 이현아입니다.

남편(김호진·46)과 이제 세 돌을 지난 아들 명관이와 함께 알콩달콩 재미있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지요.

하지만 새해 첫 출근날부터 나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1월 4일 저녁 공장에서 운전기사로 일을 하는 남편이 귀가하던 중 지하철 성서 계명대역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외에는 의지할 이 하나 없는 낯선 이국땅. 남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와 아기는 어떻게야 할지 하지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병치레 없이 건강체질이었던 남편. 하지만 갑작스레 심장에 통증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더니 '대동맥박리'라는 병으로 13시간의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름도 어려운 이 병은 심장에서 몸 전체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인 대동맥에서 미세한 파열이 생긴 병이라고 했습니다. 고혈압 환자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병이라는데 고혈압이 있긴 했지만 증세가 심하지 않아 무심히 넘긴 것이 이렇게 화근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렇잖아도 눈물 많은 저는 남편이 수술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줄곧 눈물만 흘리며 수술실 앞을 지켰습니다.

베트남에서 4남1녀의 셋째로 태어난 저는 5년 전 남편을 만나 한국땅에 왔습니다. 이미 서울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사촌 언니가 있어 결심을 하는데 별로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처음 한국땅을 밟을 때는 희망도 컸습니다.

하지만 한국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첫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재혼한 남편은 나이 어린 제게 더할 나위 없이 잘 해 줬지만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찮았던 것이죠.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저는 한국말이 능숙하지 못합니다. 간단한 대화 정도만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들 명관이도 한국말이 서툴러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일을 나가면 하루종일 혼자 집을 지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베트남에서 시집온 다른 친구들처럼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계셨으면…"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남편의 부모님은 벌써 20년 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계셨으면 말도 빨리 배우고, 김치 담는 법, 제사음식 만드는 법을 좀 더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겠지요.

특히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제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이런 제가 안타까웠는지 "퇴원하고 나면 복지관에라도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라"며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남편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입니다. 하지만 1천4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마련할 일이 걱정입니다. 퇴원 후에도 한동안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하니 생계를 유지할 길도 막막합니다.

장밋빛 꿈을 안고 시작한 한국생활, 이렇게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일까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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