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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다크 투어리즘…역발상의 미학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동쪽의 내륙산간도시 유바리시. 이 도시는 쇠락해가는 탄광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관광 시설 조성에 많은 투자를 했다. 1990년대부터는 '유바리 판타스틱 영화제'(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2002년 이 영화제에 초청받아 그랑프리를 차지했다)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과다한 투자가 화를 불렀다. 유바리시는 2006년 6월 360억 엔의 빚을 지고 파산했다. 일본 정부는 유바리시의 재정 회복을 위해 극단의 처방을 내렸다. 공무원 축소 및 임금 삭감, 각종 시설물의 처분과 공공요금 인상, 교육'사회복지 분야의 서비스 최소화 등의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바리시는 실패 경험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기지를 발휘했다. 시는 도시의 몰락 과정을 소개하는 관광상품 '유바리 다큐멘터리 투어'를 만들었다. 이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은 물론 한국 등 여러 나라의 공무원들이 유바리시로 몰리고 있다. 유바리 시장과 시청의 전'현직 간부들은 도시가 몰락한 경과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도시의 명소인 석탄역사촌, 탄광생활관, 시립미술관, 영화관 등을 관광하게 한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새로운 관광 테마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실패를 자산화하자는 실패학을 관광상품화한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이 일어났거나 역사적인 비극이 벌어졌던 곳을 찾아가 반성을 하고 교훈을 얻기 위한 여행이다. 이 용어는 1966년에 처음 등장했지만, 2000년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대학의 교수 멜컴 폴리(Malcolm Foley)와 존 레논(John Lennon)이 함께 지은 책의 제목으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바리 다큐멘터리 투어'와 같은 다크 투어리즘의 사례들은 많다. 9'11테러가 발생했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히로시마의 평화박물관, 난징대학살의 역사를 담은 중국 난징박물관,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 빙하가 녹고 있는 알래스카 등을 떠올려 보면 다크 투어리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에도 다크 투어리즘을 겨냥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비무장지대(DMZ)와 3개 시'도의 10개 군에 걸친 접경 지역을 PLZ(Peace Life Zone), 즉 평화'생명지대로 이름 짓고 관광자원화에 나서고 있다. 유조선 충돌로 원유가 방출됐던 태안반도에서 열릴 예정인 '태안환경축제'도 그런 사례이다.

대구경북에도 다크 투어리즘의 자원이 될 곳들이 있다. 팔공산에 있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그렇다.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끔찍한 재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다. 수질오염과 상수도 관리에 경종을 울렸던 낙동강 페놀 사태도 다크 투어리즘의 훌륭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당시의 상황과 대응 과정, 그리고 현재의 안전한 수돗물 공급 체계를 보여주는 것과 함께 물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것도 방안이다.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과 대구 앞산의 낙동강승전기념관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1981년 설립된 다부동기념관은 전쟁의 참상과 긴박함을 느끼게 하는 각종 자료들이 전시돼 있지만, 지금은 거의 방치 상태이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는 '한국 방문의 해'이다. 정부가 국제관광경쟁력 20위권(세계경제포럼 선정, 2009년 31위) 진입을 목표로 '한국 방문의 해' 3개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2년까지 외래 관광객 1천만 명, 관광 수입 130억 달러를 목표로 삼았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 27일~9월 4일)가 열릴 내년은 '대구 방문의 해'이다. 대구시는 관광자원 확충을 위해 동화사에 국제 관광선원을 만들고, 외국인 전용 카지노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경북은 경주에서 10월쯤 '한국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을 주제로 한류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구경북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 다른 곳에선 보거나 경험할 수 없는 우리만의 것들이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 해답을 역발상의 미학, 다크 투어리즘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김교영 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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