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31>안동식혜

동치미인듯 식혜인듯…실은 대한민국 요구르트

투박한 질그릇에 담은 안동식혜. 안동식혜는 놋그릇, 대접, 사발, 양푼이, 바가지 어디에 담아내도 잘 어울리는 안동특산 전통음식이다.
투박한 질그릇에 담은 안동식혜. 안동식혜는 놋그릇, 대접, 사발, 양푼이, 바가지 어디에 담아내도 잘 어울리는 안동특산 전통음식이다.
위생PET 투명용기에 예쁘게 디자인한 밀착필름을 입혀 마트 판매용으로 개발한 안동식혜 포장판매 용기가 빨간 안동식혜와 너무 잘 어울린다.
위생PET 투명용기에 예쁘게 디자인한 밀착필름을 입혀 마트 판매용으로 개발한 안동식혜 포장판매 용기가 빨간 안동식혜와 너무 잘 어울린다.

'똑똑 똑똑똑똑, 똑 똑똑똑.'

요즘처럼 설을 며칠 앞둔 섣달그믐 무렵이 되면 안동지방에는 집집마다 일제히 이 소리가 난다. 설날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이 소리는 '똑딱똑딱' 장단 맞추듯 나는 다듬이 소리와는 달리 담장을 넘어서는 거리면 들릴 듯 말 듯해진다. 마치 잔잔하게 흘리는 난타공연의 전주 리듬 같은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이맘때쯤 안동지방을 찾는 길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한번쯤 귀를 귀울여 보게 된다. 그러나 지게를 진 앞집 할아버지도 골목길서 제기차기 놀이를 하는 동네 꼬마들도 안동 사람이면 누구나 무슨 소리인지 다 안다. 무를 써는 칼이 도마에 부딛치면서 나는 소리, 바로 그 유명한 안동식혜를 만드는 소리다. 무 썰기를 시작으로 안동식혜를 다 완성하는 데는 꼬박 3일이 걸린다. 그래서 설날 3일 전쯤부터 일제히 합주하듯이 집집마다 이 소리가 나게 되는 것이다.

◆안동식혜의 우수성

이렇게 안동지방은 설밑이 되면 집집마다 내는 도마 소리로 마을마다 다들 행복에 겨워진다. 나뭇짐을 진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지고 골목길 아이들도 더욱 신나게 제기차기를 한다. 동네 어머니들의 설날 준비가 시작됐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타지방 사람들이 안동 향토음식 중 독특하다고 첫번째로 손꼽는 안동식혜는 무가 주 재료다. 엿기름(맥아)물에다 잘게 썬 무와 고두밥을 삭혀 내기에 음식재료가 그저그런,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것들이다. 그러니 살림이 넉넉한 부잣집도, 못 사는 초가삼칸도 안동식혜만큼은 모두 다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장만해 냈던 '범주민' 설음식이다.

안동식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두번 놀란다. 고춧가루 물이 들어가 불그스레한 색깔과 음식모양에 먼저 놀란다. 수저를 들고도 그냥 들여다보기만 한다. 불그스레한 물에 잘게 썬 무가 떠있는 게 마치 물김치 같기도 하고, 밥알이 섞여 있으니 무슨 냉국밥 같기도 하니 상을 내 온 사람만 힐끗 쳐다보고 그냥 있을 수밖에. 그래서 안동식혜에 대해 식도락가들은 곧잘 이렇게 평한다.

'마시는 음(飮)이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는 식(食)이랄 수도 없고…. 그야말로 음과 식이 한그릇 속에 뒤섞여 어우러진 유일한 음식(飮食)'이라고. 그러나 한숟갈을 입에 떠넣으면 생전 처음 느끼는 색다른 맛에 두번째 놀란다. 시원하고도 매콤달콤하며 생강의 진한 향까지 느껴지는, 어느 음식에서도 못 느껴본, 생전 처음 겪는 맛이기 때문이다. 이상야릇한 맛에 다시 한숟갈, 한숟갈 하다가 그만 차츰 입에 달라붙고 만다. 이 안동식혜가 입에 달라붙게 돼야 비로소 안동며느리가 되고 안동사람이 되는 것. 안동식혜를 맛들이게 되면 안동내기든 서울내기든 죽을 때까지 안동식혜 앞에선 그냥 춘하추동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맥을 못추게 된다.

얼핏 고두밥을 엿기름 물에 삭혀내는 게 일반 식혜와 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음식 성격이 완전 딴판이다. 안동에선 감주(甘酒)라 부르는 식혜는 엿기름 물에 고두밥을 넣고 펄펄 끓여서 만들지만 안동식혜는 끓이지 않고 그냥 술 빚듯이 따뜻한 아랫목에서 삭혀내는 발효음식이다. 그래서 상온에 오래 두면 일반 식혜는 세균이 들어가 썩기 시작하지만 안동식혜는 썩지 않는다. 살아있는 유산균주가 부패를 막기 때문이다. 오래두면 발효가 계속돼 식초가 되면 됐지 부패해서 먹은 사람이 배탈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다. 실지로 안동사람들은 명절에 남은 안동식혜로 초를 만들어 조리용이나 식용으로 쓰기도 한다. 또한 일반식혜는 끓이기 때문에 삭혀내는 과정에서 생성된 유산균이 모두 사멸해 버린다. 반면 안동식혜는 생막걸리처럼 먹고 있거나 보관 중에도 유산균이 계속 증식하는 순우리 생유산균 음식. 대한민국 요구르트다. 몸에 뭐가 더 이로운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지는 대목이다.

◆안동식혜 만드는 법

"예쁜 안동식혜를 만들려면 먼저 고두밥을 잘해야 돼요. 밥알이 부스러지면 식혜가 지저분해지잖아요. 밥알이 동동주처럼 모양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하거든요."

'빨간 안동식혜'라는 이름으로 상업화에 첫발을 내디딘 안동식혜영농조합법인(andongsikhye.com) 대표 김유조(52·안동시 송천동 998-5)씨는 안동식혜뿐만 아니라 고두밥 짓기에도 명인이다. 김씨는 가마솥 고두밥 경험을 살려내 안동식혜용 고두밥 레시피도 손수 개발했다. 찹쌀 2/3, 멥쌀 1/3로 구성비를 맞추고 6시간 이상 물에 불린 다음 찜솥에다 찌는 방식이다. 고두밥 속의 전분을 엿기름 물속 효소가 다 삭혀내도 송골송골한 밥알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도록 고슬고슬하게 쪄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일반식혜는 끓인다고 하는데 안동식혜는 담근다고 표현한다. 먼저 무를 가로×세로 5㎜씩 두께 3㎜ 정도로 깍둑썰기로 잘게 썰어 둔다. 무는 겨우내 무구덩이 속에서 결이 잘 삭은 것을 고른다. 맵지 않고 아삭아삭한 무로 만들어야 안동식혜 맛이 더 좋기 때문에 무 잘 고르는 것도 음식솜씨에 한몫을 거든다. 바람든 무는 못 쓴다. 옛날에는 깍둑썰기와 채썬 무를 섞어서 담그기도 했으나 채썬 무가 숟가락에 감겨 지저분해진다며 요즘은 거의 깍둑썰기로 장만한다. 다음은 엿기름을 채로 걸러 뿌연 엿기름 물을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 놓는다. 다진 생강을 채로 걸러 알싸한 생강물을 만들어 놓고 고춧가루도 천 보자기로 싸서 빨간 고춧물을 내 엿기름 물 항아리에다 적당하게 섞어 준다. 순서는 아무래도 좋다. 이때 물 빛깔이 붉다. 여기에다 썰어놓은 무와 고두밥을 넣고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약 6시간 동안 30∼40℃ 정도 유지해 두면 차츰 주황색으로 변하면서 발효되기 시작한다. 고두밥이 무 사이로 동동 뜨게 되면 다 삭은 것. 바로 아랫목에서 바깥으로 항아리를 옮겨 발효를 억제하면서 3일간의 냉장후숙 과정을 거친다. 너무 오래 발효시키면 시어지고 무가 물러지며, 너무 일찍 발효를 중단해도 거친 식혜가 돼 맛이 덜하다. 살얼음이 살짝 끼일 정도의 0∼3℃로 보관할 경우 한달도 거뜬하다. 이러니 조미료와 방부제, 향신료, 착색제, 감미료 등 일체의 화학 첨가물은 쓸 필요조차 없다.

◆안동식혜 산업화

"그 옛날 설날이나 정초에 세배 손님이 찾아오면 집집마다 안동식혜를 냈습니다. 귀한 손님이라도 딱 안동식혜 한 그릇이면 되니 당시 며느리들에겐 손님 상차림으로 그만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안동식혜 없으면 명절을 못 쇠는 줄 알았어요."

의성 점곡이 고향인 미식가 이계홍(58·여·대구 신암1동 뜨란채)씨는 대구에 살면서도 안동식혜 예찬론자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음식기행을 즐기는 그도 '안동식혜만한 웰빙 건강음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했다'고 격찬한다. 설날, 추석은 물론이고 한여름 잔치 때도 이씨 집에는 안동식혜가 빠지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이처럼 산업화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안동식혜권' 사람들이 전국에 나가 살게 되면서 많이 알려졌고 그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최근 들어 차츰 대중화를 이뤄가고 있는 참이다. 관련 식품위생 규정이 없을 정도로 이 독특하고 이색적인 전통음식은 김유조씨의 상업화를 통해 6년 전 처음 '기타가공식품'으로 분류됐다가 최근 들어 '즉석섭취식품'이라는 새 음식유형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마련했다. 우리 농산물만 쓰니 농업 기여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김유조씨 영농조합에서 지난 해 쓴 쌀만 해도 1만㎏에 이른다. 지금은 가내공업 수준이지만 자동화 생산공정을 구축하고 냉장유통 판매설비만 개발할 경우 전국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어 쌀소비 촉진에도 더할 나위 없는 소재. 그러니 안동식혜 제조가공은 각종 정책자금을 받아내기도 좋은 조건을 골고루 갖춰 사업전망도 좋은 편이다. 현재 김씨의 영농조합 한곳에서만 상품을 출시하고 있으나 몇몇 사람들이 후발주자로 준비중이다. 1㎏(6천원), 2㎏(1만2천원), 4㎏(3만원)으로 포장되는 김씨의 안동식혜는 유통기한 20일. 스티로폼 포장박스도 개발해 두고 있어 전국 어디든지 택배가 가능하다. 054)823-0117.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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