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기기증 신청 18만명 넘어…'사랑과 나눔' 세상을 바꿨다

선종 년, 추모 열기 더욱 확산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인 16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주교의 집전 아래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인 16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주교의 집전 아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1주기 추모미사'가 열렸다. 이채근기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선종 1년.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눔'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닌, 행동으로 한다는 걸 보여준 김 추기경의 실천은 사람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각인됐다. 그가 남긴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김 추기경의 선종 이후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1년이 지난 지금,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추기경의 메시지를 곱씹고 있다.

◆그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추모 미사가 16일 계산성당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집무대행 조환길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돼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추모 미사는 8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입장하지 못한 많은 참례객들은 성당 마당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했다.

조환길 주교는 이날 추모 미사에서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분의 삶과 정신에 있다"며 "김 추기경은 예술인처럼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삶을 사셨다"고 말했다. 조 주교는 또 "김 추기경의 삶과 정신을 본받아 사는 것이 오늘 추모 미사의 의미"라며 "천주교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 장기기증운동에 적극 동참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계산성당 마당에선 천주교 대구대교구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 회원들이 김 추기경이 남긴 말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신자들을 대상으로 생명사랑나눔 홍보 및 장기기증 서명운동을 벌였다. 생명사랑나눔운동본부는 20일 대구 중구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장기기증 홍보 및 서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경북지역에서도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김 추기경이 어린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 용대리 옛집에는 16일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지난 한 해 동안 2만5천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의 옛집은 작은 방 2개와 부엌 1개의 전형적인 초가집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손님을 맞고 있다. 장재성(55·안드레아·구미시 도량동)씨는 "15일에 이어 16일에도 김 추기경님의 옛집에서 아내와 함께 미사를 올렸다"며 "추기경님이 비록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 마음은 우리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얘기했다. 한편 군위성당(주임신부 최호철·안토니오)은 27일 오후 6시에 김 추기경 추모음악회에 이어 추모 미사를 올릴 예정이다.

김 추기경이 첫 사역지로 부임했던 안동 목성동성당에서도 16일 추모 미사가 거행됐다. 천주교 안동교구 권혁주 주교 집전으로 거행된 추모 미사엔 신도 500여명이 함께했다.

권혁주 주교는 강론을 통해 "고인께서는 언제나 사랑과 화해를 실천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삶을 사셨던 참 그리스도인이었다"며 "사제이기 전에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한 사람으로 우리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평안을 주셨던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1953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대주교 비서신부로 안동을 떠날 때까지 1년7개월 동안 김 추기경이 안동지역에 남겼던 인상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신자 박명희(72)씨는 "찢어질 듯 가난했던 당시에 미사를 보러 간 신도들에게 김 추기경께서 가만히 돈을 건네주면서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김 추기경이 근무했던 김천 황금성당과 가톨릭재단인 성의중·고교에서도 선종 1주기를 맞아 추모 분위기에 젖었다. 김 추기경은 1955년 김천성당(현 황금성당) 주임신부 겸 성의학교(중·고) 교장을 지내다 1년 남짓한 김천 생활을 접고 1956년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성의여상고를 다녔다는 박경애(74)씨는 "여고 2학년 초가을 무렵 김수환 교장 신부님이 부임해와 해맑은 인상으로 첫 부임인사를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이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6월 둘째 주 토요일 모교에서 동창회를 하고 추기경님이 계시는 서울 명동성당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느그들 왔구나' 하고 늘 반겨 주셨다"고 얘기했다.

◆서로 사랑하세요

스스로를 '바보'라 하고 '남에게 밥이 되라'고 한 김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은 선종 이후 우리 사회를 또 한번 움직였다. 생전 서약대로 안구를 기증, 말이 아닌 실천의 '간증'을 보여주었다. 종교의 벽은 '사랑'이라는 공통분모에 허물어졌고 장기 기증 신청이 도미노처럼 번졌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병원과 장기기증 등록단체를 통해 신청한 장기기증 희망자는 18만546명. 장기기증운동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였다.

대구경북에서도 2009년까지 장기기증 운동에 4만6천821명(대구 2만5천493명, 경북 2만1천328명)이 동참한 가운데 김 추기경의 선종이 있던 지난해에는 한 해 동안 8천300여명이 장기기증 릴레이에 동참, 가장 많은 기증을 한 해로 기록됐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사후 각막기증 신청은 지난해 3천730건에 이르렀다. 2008년(2천819건)에 비해 32.3% 증가한 것.

최근 선종 1주년을 즈음해서 장기기증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이곳 박명숙 사업팀장은 "지난해에는 '김 추기경 효과'가 대단했다"며 "선종 1주기를 맞아 이달에도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이식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각막기증 희망자의 각막을 사망 6시간 안에 적출해야 하지만 유족이 기증 사실을 모르거나 이식수술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김 추기경의 삶은 '감사와 사랑의 연속'이었다. 고맙기에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고마운 삶을 실천했다. 우리 사회의 큰어른으로 올곧을 수 있었던 신념이며, 양심이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하늘같이 대했다. "교회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위해, 사회를 위해, 남을 위해 있다"고 말한 김 추기경은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약자와 눈높이를 맞췄다. 김 추기경의 유일한 가늠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전부였다.

"난 1970, 80년대 격동기를 헤쳐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고 했을 따름이다."

김성우·이희대·이종규·엄재진·김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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