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 3가지를 꼽으라면 재테크와 레저 그리고 건강이라고 한다. 돈도 잘 벌고, 재미있게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건강 관련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병원 탐방기'이다. 어느 질환에는 어느 병원의 누가 용하다더라부터, 이런저런 질병에는 병원이고 의사도 소용없고 그저 민간요법이 최고더라, 어느 병원에선 치료비가 말도 안 되게 많이 나왔더라, 어느 의사는 정말 친절하게 조목조목 잘 알려주더라 등등. 하지만 이런 이야기 중에 한 줄기를 차지하는 것이 '의사 불신'이다. 의료계에서도 이런 불신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사의 진찰조차 믿지 못하는 환자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범람하면서 명의(名醫)를 어느 때보다 빨리 찾을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는 의료정보가 넘치면서 의사들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의사 진찰에 대해 의심부터하며 2, 3차 진료를 받는 경우도 많아졌고, 심지어 치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의사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과연 환자들이 갖는 불만은 불신 때문일까, 잘못된 진료 때문일까?
"조금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주사를 맞거나 물리치료를 하면 증상이 나아질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허리디스크라면서 수술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40대 후반인 김모씨는 지난해 허리 때문에 고생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지만 김씨는 오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다. 진찰을 한 의사는 되려 화를 내면서 "누가 디스크라고 하던가요?"라고 되물었고, 물리치료를 받고 자세교정만 하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도 했다. "처음 진찰한 의사 말만 믿고 수술을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거죠?"
서울에 살고 있는 박모(50)씨는 엉뚱하게도 검사비 120만원을 날린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진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병원에 갔더니 혈관 쪽에 종양이 의심된다면서 검사를 해보자는 겁니다. 무슨 병이냐고 물었더니 '암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박씨는 결국 검사에 응하기로 했다. MRI 촬영과 각종 검사비로 청구된 돈은 120만원. 하지만 결과는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보험사에 문의해봤지만 "단순 의심 때문에 진찰한 경우는 보험료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다. "물론 의사가 악의적으로 그런 진단을 내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 한마디 때문에 큰 돈이 날아간 환자는 어디서 하소연 합니까?"
◆과연 실수로 볼 수 있을까
이처럼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외에 동네 의원에 대한 불만 사례도 많다. 의원을 찾는 경우, 대개 가벼운 질환이나 상처가 대부분이다보니 모르고 지나친다. 하지만 일부 사례는 아찔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거나 환자를 고의로 속였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주부 이모(38)씨는 지난해 큰딸(11)의 치아 치료 때문에 동네 치과를 찾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어금니 쪽에 검은 점도 보이고, 치과 검진을 받은 지 일년이 넘어서 동네 치과를 찾았죠. 어금니 하나가 썩어서 치료를 해야 하고, 나머지 치아도 불소도포나 실란트(치아의 홈을 메워서 충치 발생을 막는 방법)를 해야 한다면서 전체 치료비가 30만원이 넘게 나온다고 하더군요." 가볍게 생각하고 치과를 찾았던 이씨는 비용 때문에 깜짝 놀라서 일단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한 뒤 다른 치과를 찾아갔다. "똑같은 치료를 했는데 7만원이 나왔습니다. 당초 비싼 재료를 써서 치료해야 한다는 어금니는 알고봤더니 젖니였습니다. 금방 이를 갈텐데 굳이 비싼 재료 쓸 필요 없다면서 아말감으로 치료해주더군요. 나머지 비용도 조금씩 차이가 났습니다." 이씨는 "과연 먼저 간 치과에서 젖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런 비싼 재료를 쓰라고 종용했겠느냐"며 "의료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한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했다.
다섯 살 난 아들에게 엉뚱한 약을 일주일이나 썼다는 주부 김모(35)씨의 사연은 기가 막힐 정도다. "아이가 자꾸 코를 킁킁 거리고, 코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겁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동네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아이의 코를 들여다본 의사는 염증이 생긴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 주었고, 별 차도가 없어서 다시 갔더니 사흘치를 다시 처방해 주었다. 아무래도 의심스런 마음이 들어서 이비인후과에 아이를 데려간 김씨는 진찰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의 콧속에서 작게 말린 스카치테이프 조각이 나오는 겁니다. 실수로 콧속에 테이프를 집어넣은 아이가 그것을 빼려다가 더 깊숙히 넣어버린 것이죠." 이런 줄도 모르고 엉뚱하게 항생제를 일주일이나 복용하게 했던 것. 김씨는 이튿날 당장 처음 진료한 의원에 찾아가 따지려다가 참았다. "진료비를 돌려받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요."
◆구조적 문제가 부른 의료계의 한 단면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그저 불평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의사대상 범죄가 무려 1천~5천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멱살잡이나 단순 폭행을 넘어서 중대한 상해를 입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의료행위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이유에 대해 의료계는 근거도 분명치 않은 입소문 때문에 정당한 진료까지 불신을 사고 있으며, 특히 잘못된 의학정보들이 인터넷에 범람하면서 환자들이 마치 의사처럼 행세하는 것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현재 너무 낮게 책정된 건강보험 의료수가 체제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병·의원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도록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종합병원 한 관계자는 "외과·산부인과가 전공의를 모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만 봐도 얼마나 보험수가 체제가 잘못 돼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질병이 의심되는 경우 의사는 당연히 검사를 권해야 하며, 그것은 결코 과잉진료라고 볼 수 없다"며 "만약 검사를 통해 질환이 확인되면 의사에게 고마워하면서, 반대로 건강한 것으로 판명나면 검사비만 받아챙긴다며 되려 의사를 원망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개원의사는 "일부 악덕 의사들이 건강보험 비급여 부문에서 환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분명히 처벌해야 하고, 의사 역시 자정 노력을 해야 하지만 미꾸라지 한두 마리 때문에 의료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한 교수는 "의료서비스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 봐야 한다"며 "1천원짜리 물건을 살 때도 상품 정보가 불확실하면 구매하지 않는데 하물며 의료서비스는 더욱 투명하고 정확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의료가 상품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상품 제공자도 고객 눈높이에 맞는 상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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