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돔배기

특유의 냄새, 고향처럼 그리워…

우리 집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 어머니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모시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에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거룩한 시간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아침식사 때 추모기도를 올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 가문의 조상님들은 제대로 된 제삿밥 한 번 잡숫지 못해 몹시 허기져 계시거나 영양실조로 저승에서 다시 사망하여 다른 저승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설'추석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

어머니는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명절 음식만은 그런대로 장만하셨다. 해마다 설과 추석 땐 돔배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당시의 돔배기는 숙성된 것이 아니라 반쯤 썩다 만 것들이어서 변질된 암모니아 냄새를 풍겼는데 고향사람들은 "웨한 냄새가 나도 먹어보면 먹을 만하다"고 했다.

먹기 싫어도 어머니의 맘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한 조각 씹어보면 역겨운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 다섯 남매 모두가 촛불을 켜지 않은 묵언 시위를 벌였지만 명절이 돌아오면 여전히 냄새 나는 돔배기는 점령군 사령관처럼 다른 반찬 위에서 군림했다. 돔배기는 생물보다 배 이상 헐값이었기에 어머니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돔배기의 기억은 지금도 추억이란 앨범 속에 지독한 냄새를 풍풍 풍기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몹시 싫어했던 것들도 그리울 때가 있다. 명절대목 밑 고향 어물전에서 만나는 냄새 나는 돔배기가 바로 그런 것이다. 단골 영감님에게 "웨한 냄새 나는 것은 없습니까?"하고 물으면 "젊은 주부들이 그런 돔배기는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심하게 상한 것들은 버린다"고 했다.

고향 냄새가 생각 속의 기체라면 그 냄새를 풍기는 돔배기는 현실 속의 고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돔배기 한 조각을 먹으면 그리운 고향을 통째로 삼키는 것이 되어 오랜 향수병이 치유될 것 같지만 아내가 굽기 전에 기겁을 할 것 같아 꾹 참고 발길을 돌린다.

##'양재기'색깔 검어도 맛은 그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추석날 성묘를 마치고 고향집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어머니의 어릴 적 친구인 조선네 집을 찾아가면 근사한 나물밥에 정말 맛있는 돔배기를 맛볼 수 있었다. 조선네는 어머니보다 두 살 위의 언니로 조선에 있는 것은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였다. 그 별명도 어머니가 지어준 것인데 우리는 멋모르고 '조선네'라고 불렀다.

두 집안 식구들의 이름을 가계도(家系圖) 그리듯 세로로 나열하고 줄을 그으면 균형 잡힌 사다리가 된다. 두 어머니를 비롯하여 누님들이 고만고만한 또래들이었고 아들들도 동급생들로 지금도 다정한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추석에는 맛있는 돔배기를 시장에서 사는 법을 조선네 어머니께 물었다. "야가 별걸 다 묻네"라고 하시더니 말문을 여셨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부채처럼 양쪽 귀가 큰 귀상어를 골라야 해. 그걸 양재기라고 하는데 색깔은 검어도 맛은 그만이지. 되도록이면 단골을 정해 두고 돈은 달라는 대로 줘야 돼. 별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에겐 별나게 맛있는 것을 주는 법이야. 그게 내 식이야. 알겠제."

두 어머니는 21세기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어머니보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조선네가 고향 산천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경산의 어느 공원묘원에 묻혔다기에 서로 외롭지 않도록 어머니도 그곳으로 모셨다. 사다리의 줄긋기는 한 줄 더 늘어났고 요즘도 조선네와 어머니가 매사에 맞장을 뜨며 심심찮게 지낼 것이라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어머니 곁에는 조선네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돔배기 반찬에 제삿밥은 거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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