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雲門에서 華岳까지] (9)산내면 산내군

경주-청도 나누는 문복능선, 장쾌한 운문사 계곡 형성

지금까지 우리는 사룡산서 부산(富山), 단석산, 백운산, 고헌산, 기와미기를 거쳐 895m봉과 문복산줄기까지 한참 멀리 돌았다. 독자들 중엔 현기증이 나려는 경우까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줄기만 그렇게 복잡했을 뿐, 많은 이들에게 더 익숙한 행정구역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는 다음의 딱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전부를 다 합쳐야 경주 산내면의 외곽 산줄기에 불과하다."

그 외곽 중 아직 우리가 살피지 못한 것은 서편의 두 산줄기다. 사룡산서 운문호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서는 '장륙능선'과, 그걸 향해 895m봉서 마주 달리는 문복산줄기가 그것이다. 두 산줄기는 운문호의 북동편 끝부분에서 딱 맞물린다. 그렇게 해서 경주 산내면과 청도 운문면을 구획 짓는 것이다.

그 중 장륙능선은 오는 초여름쯤 비슬기맥을 다루기 시작할 때 공들여 살피기로 하고, 우선 문복산줄기를 답사해 보자.

문복산 이후 여럿으로 갈라져 가는 그 산줄기들 가운데 산내-운문 분계선은 895m봉~문복산(1,014m)~수리덤산(837m)~옹강산(832m)~606m봉~동경마을 사이를 무려 50여리나 이어달리는 지맥이다. '문복능선'이라 불러 놓는 게 좋겠다. 그 서편은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동편은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일부리(日富里)다.

그 출발점인 895m봉은 산줄기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정점에 '청도산악회'서 2007년 세운 '낙동정맥'이란 정맥길 표석이 그 징표다. 금방 오를 수 있으면서 고헌산·대현리·기와미기 등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이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포인트면 당연히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칭되고 얘기되기 쉽다. 하지만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 전래 명칭이 묻혀 온 것이다. 앞서 본 '기와미기' 같다. 895m봉 꼭짓점에 산림청이 세워 놓은 방향표지에서 또 한번 확인되는 게 무명의 설움이다. 운문령·문복산·산내 세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 중 '산내'는 분명 기와미기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 이름을 모르다 보니 어물쩍 '산내'라 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기와미기라는 옛 이름이 드러내졌듯, 895m봉의 전래 명칭도 이번 취재 과정서 밝혀졌다. 삼계마을 옛 어른들에 의해 '학대사산'이라 불리다가 '학대산'으로 줄여졌음이 확인된 것이다. '학 대사'라 불리던 스님이 이 봉우리에 와 세상을 떠났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고 했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천화'(遷化) 장소로 이 산을 택했던 셈이다. 지금도 거기 스님의 묘가 있고, 옆에서는 샘이 솟는다고 했다. 학대산은 북동쪽 기와미기(와항A지구)서 올라도 되고 남서쪽 운문령서도 30분이면 족히 이를 수 있다.

문복산은 학대산서 평면거리로 3.3㎞쯤 떨어져 있다. 슬슬 경관을 감상하며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도달한다. 산길도 편안하다.

하나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생긴다. 막상 정상부에 도달해 보면 최고점이 어딘지 헷갈린다. 거기엔 봉우리가 두 개 솟았다. 먼저 돌탑 봉우리에 닿고, 곧이어 정상석 봉우리에 도달한다. 뒤의 것이 최고점이라는 뜻이다. 등산 안내서들도 흔히 앞의 것은 해발 1,010m밖에 안 된다고 소개한다. 그런데도 돌탑봉우리가 더 높아 보인다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 우리가 의지할 판단 잣대는 역시 1대 5,000 지형도다. 그 지도에는 두 봉우리 높이가 같게 나온다. 돌탑 봉우리는 1,014.1m, 정상석 봉우리는 1,014.4m다. 사람 육감이 저다지 예민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일이다.

문복산에서는 서편으로 큰 지릉이 하나 갈라져 내려선다. 끝 부분에 신원리 삼계(三溪)마을이 분포한 산줄기다. 이걸 분계령으로 해서 그 남쪽의 '계살피골'과 북편의 '수리덤골'이 나뉜다.

그 중 수리덤골 뒷능선에 있는 게 '수리덤산'이다. 문복산과 40여분 거리다. 그 이름으로 부르는 쪽은 서편 삼계마을이다. 그 아래 골도 수리덤골이니 짝이 잘 맞아 보인다. 반면 그 북편 산내면 일부리서는 따로 부르는 명칭이 없다고 했다. 마을로부터 워낙 외지게 돌아져 있어 자주 지칭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국가 공식 지도는 그 봉우리 이름을 '서담골산'이라 적어놓고 있다. 어디서 돌출한 걸까? 누군가 '수리덤골산'이라고 가르쳐준 것을 지명조사원이 '수덤골산'으로 잘못 알아들었는가 싶다. 틀린 이름의 정상석이 아직 안 선 게 그나마 다행이다. 관계기관이 서둘러 조사해 더 왜곡되기 전에 제 이름을 고정시켜야겠다.

수리덤산이란 지명 중 '덤'은 옆면이 절벽이고 윗면이 평평한 지형이다. 그런 곳에선 저 아래 골을 쉽게 조망할 수 있다. 등산객들에겐 시원스런 전망대가 되고, 맹금류에겐 먹이 찾는 관측소로 좋다. 그래서 수리들이 몰려 앉으면 '수리덤', 부엉이가 앉으면 '부엉덤'이라 불린다.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지명들이다.

수리덤산을 지난 뒤에 문복능선은 서편을 향해 직각으로 굽는다. 그리고는 재로 폭락했다가 봉우리로 오르고 또 떨어졌다가 다시 솟아 암봉을 이룬다. 문복산을 음미할 좋은 전망대다. 북으로는 일부리 마을과 들이 훤하다. 암봉 위 소나무도 일품이다. 한겨울에도 바람 없고 따뜻했다. 이게 수리덤 아닐까 싶었다.

거길 거친 뒤 산줄기는 해발 449m밖에 안 되는 낮은 재로 떨어진다. 이걸 지도나 등산객들은 '삼계(거)리재'라 지칭한다. 그러나 삼계마을에선 '심원재'라 했고 재 너머 일부리 어르신도 '심원령'이라 불렀다. 이게 더 토착적 이름일 듯했다.

'심원'(深源)이라는 명칭에는 현실성이 있고 역사성도 있다. 당장에 재 너머 일부리 골 끝에 있는 저수지 이름이 '심원지'다. 그 안 유일의 건물 이름도 '심원사'다. 거기다 재 남쪽 '수리덤골' 안에 있던 옛 마을 이름도 '심원'이었다. 그 마을 터였을 듯한 매우 넓은 평지엔 지금 식당과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심원재는 삼계마을을 경주와 직결시켜주는 통로다. 그 재에서 경주시가지 입구까지는 13㎞밖에 안 된다고 했다. 옛 어른들도 대개 말을 타고 그리로 넘어 다녔다고 했다.

심원재에서 올라서면 '옹강산'(832m)이다. 수리덤산과 높이가 거의 같다. 거기서는 '옹강남릉'이라 불리는 산줄기 하나가 남쪽으로 내려서면서 수리덤골과 그 북편의 소진리 공간을 구분한다. 그런 뒤 서쪽으로 굽어 문명분교(초교) 뒤까지 이어 달린다. 남릉이 서릉으로 변한 모양새다.

옹강산에서는 이것 외에 북서릉도 갈라져 나가 이번엔 그 남편의 '소진리'와 북편의 '오진리'를 나눈다. 덕분에 그곳 오진리는 옹강산으로 올랐다가 그 마을 동편으로 이어가는 문복능선 구간을 한바퀴 돌아오는 환종주(丸縱走) 등산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마을 앞에 널찍한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돼 버스까지 숱하게 찾는다. 하산시간엔 마을 할머니들이 농산물을 팔러 나와 장이 설 정도다.

그 북서릉을 타고 오르면 1시간 50여분 만에 옹강산에 도달한다. 옛날 홍수시대에 온 산이 다 물에 잠기고 그 꼭대기만 겨우 옹기만큼 남아 '옹기산'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산이다. 그걸 지나 이어 걷는 오진리 동편능선의 끝에는 옹강산 이후 문복능선서 가장 높은 606m봉이 솟았다.

이 구간 서편에 분포해 있던 큰 마을들은 모두 운문호로 수몰돼 사라졌다. '대천'이라 불리던 일대의 중심 마을도 마찬가지다. 문복능선 맨 끄트머리에 올라앉은 '동경' 마을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거기서부터는 물이 아니라 산이 주인인 것이다. 그 산과 산줄기가 바로 운문-산내의 분계령이다.

이렇게 해서 외곽이 완성되는 산내면 공간 속 물의 출구는 오직 청도 운문호 쪽 하나뿐이다. 그 외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였다. 이런 땅은 여기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산내'(山內)라 한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면(面)이 전국에 넷이나 된다. 정읍 산내면, 남원 산내면, 밀양 산내면, 경주 산내면이다.

정읍 산내면은 그 중에서 가장 덜 산내답다. 산지 면적이 77%밖에 안 된다. 산지율 최고는 92%에 이르는 지리산 속 남원 산내면이다. 연하봉-토끼봉-삼도봉 및 만복대-정령치-고리봉 구간의 백두대간을 외곽으로 삼는다. 달궁계곡·뱀사골과 실상사를 포괄했다. 열린 곳이 인월·마천 쪽 등 복수인 점만이 아쉽다.

유일 출구에다 산세까지 대단한 것은 밀양 산내면이다. 가지산~운문산~억산~구만산 등 우리가 걸을 '운문분맥' 전부와, 가지산~능동산~천황산~정승봉~정각산을 잇는 영남알프스의 쟁쟁한 산줄기를 그 외곽으로 했다. 하지만 산지는 80%뿐이다. 복판이 산 없이 텅 비워진 결과다.

그에 대면 경주 산내의 산세는 약하다. 1,000m 넘는 산이라곤 고헌산·문복산뿐이다. 그러나 복판까지도 온통 산이다. 산지율이 84%다. 낮긴 해도 앞뒤 모두 산이라는 얘기다. 이게 특징이다.

경주 산내 물은 동쪽에 있는 경주(형산강)를 거쳐 동해로 가지 않는다. 그 반대로 흘러 동창천이 되고 밀양강이 됐다가 낙동강을 거쳐 남해로 간다. 그래서 운문호는 청도에 있지만 거기 채워지는 것의 절반은 경주 산내 물이다. '산내 물은 거꾸로 흐른다'는 말은 이래서 생겼을 거다.

청도군은 동일 수계로 편입돼 있는 경주 산내면까지 포괄해서 보다 큰 복주머니 형상을 이룬다. 군이면서도 산지 면적이 73%에 이른다. 산내면의 큰형님 같은 '산내군'(山內郡)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복주머니 모양으로 청도군을 빙 둘러싼 산줄기, 그것이 낙동정맥이요 그 운문분맥이요, 비슬기맥이요 그 화악분맥이다. 합쳐 '청도산맥'이라 불러 잘못이라 하지 못할 쟁쟁한 산줄기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