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는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통제 하에 있는 개인적 비밀과 정보를 말한다. 현대 사회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일본인들은 항상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고 자기의 프라이버시도 방해받지 않으려 애쓴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도 프라이버시 때문에 쉽게 접근을 못 한다. 한국인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자주 택시를 탔다. 처음에 나를 외국인으로 여기는 운전기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내릴 무렵 운전기사는 내가 누구이며, 왜 한국에 왔으며, 애인은 있는지 등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해버린다. 이처럼 일본인은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프라이버시에 관련되는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 대해 프라이버시에 관계되는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한국적 친밀감의 표현이다. 일본인에게는 프라이버시인 것도 한국 사람은 서로 공유하려 한다. 서로에 대한 신상과 마음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라는 연대감을 느끼고, 교제를 시작하는 것 같다. '우리'라는 의식에는 프라이버시를 넘어 친근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힘이 있다. 나의 어머니도 "우리 엄마"라고 표현하는 공동체 의식 속에는 프라이버시는 필요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는 1960년대 '연회 후'라는 소설을 둘러싼 재판 이후 사회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작품에서 모델로 삼은 그 정치인으로부터 프라이버시 침해로 고소를 당했다. 도쿄 지방법원은 이때 처음으로 일본 헌법에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일본 헌법에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으나, 1980년 OECD로부터 '개인정보 보호 8원칙'을 권고받고, 2005년 '개인정보 보호법'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방대한 개인 정보가 컴퓨터로 데이터 처리되고, 그것이 유출되거나 무단 사용될 위험성이 커진 사정도 반영된 것이다.
한국인은 자기 과시의 하나로 개인 홈페이지를 이용한다.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진을 크게 올려놓는 사람도 많다. 일본에서는 자신이나 지인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가 드물다. 올려도 눈 부분을 가리거나 모자이크처리 한다. 마치 범죄자처럼 우스꽝스런 모습이 되어 버리지만, 스토킹을 방지하고 멋대로 수정이나 합성되어 범죄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초상권도 프라이버시와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사진을 무단으로 잡지나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경우 인격권 침해와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 얼마 전 아사히 신문에 길거리에서 스냅 사진을 찍기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초상권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사진에 담기 어려워졌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생활의 기록에 사람의 그림자가 없어지게 된다.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존중함으로써 사람 냄새가 없어져 버리게 된 것이 지금 일본의 모습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용과 함께 한국 사회는 삶의 여백이 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상 주차,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열정적인 접근, 각종 소프트웨어의 무료 다운로드 등은 일본에서는 곧장 법률로 처벌받는다. 한국에도 유사한 법률이 있지만, 일본만큼 엄하게 규제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은 인간의 욕망과 실수, 실패도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한 규칙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허용되는 여백이 있는 것이 한국 사회가 아닐까.
일본에서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왜곡된 형태로 개인화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함으로써 진정한 인간관계를 잃어버리고 있다. 먼 옛날, 인간 생활에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는 없었다. 그때 사람들은 더 자연스럽게 교제하면서 존중받았다.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 대학 박사과정 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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