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희정(33·여)씨는 요즘 휴대전화 교체를 두고 고민 중이다. 스마트폰의 놀라운 성능을 경험하려면 10년 가까이 사용해온 '011'번호를 포기하고 '010'으로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010번호를 다시 011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워낙 오랫동안 사용한 번호인데다 지인들에게 일일이 번호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번거롭다. 박씨는 "스마트폰이나 맘에 드는 휴대전화는 많지만 번호를 바꿔야한다는 사실에 망설여진다"며 "왜 굳이 번호를 바꾸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010번호 통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가 2004년 010번호통합 계획을 세우면서 강제 통합 조건으로 삼았던 '전체 가입자 수의 80% 이상'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010번호통합 정책의 시행 시기와 방식 등을 두고 고민에 빠졌지만 기존 번호 사용자들의 반발과 이동통신사들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번호 바꾸기 싫어
정부는 특정 국번이 통신사의 고유 브랜드처럼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4년부터 010번호통합 정책을 펴왔다. 덕분에 3세대(3G) 가입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01X번호는 줄고 있지만 여전히 기존 번호를 고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휴대전화 번호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01X번호 이용자의 대다수는 번호 통합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최근 대구 등 전국 6대 도시 휴대전화 이용자 1천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01X번호 이용자의 93%가 번호를 바꾸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01X이용자 중 82%는 번호통합 정책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번호통합 계획의 취지를 이해하는 이는 24%에 불과했다. 더구나 번호 이동을 선호하지 않는 응답자 중 61%는 '번호통합이 불필요하다'고 답했고, '번호 변경 시 불편이 크다'는 응답자도 72%나 됐다. 3G 휴대전화를 선택할 때 반드시 번호를 변경하도록 한 것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들은 "강제로 010번호로 전환하는 정책은 사용자들의 불편이나 번호에 대한 선호도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SKT vs KT, LGT
이통사들은 동상이몽이다. 번호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입장차가 뚜렷한 것. 가입자의 20%인 450만여명이 충성도 높은 011고객인 SK텔레콤은 점진적인 통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충성도 높은 고객은 가입자당매출(ARPU)이 평균보다 높고 011번호자체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후발업체인 KT와 통합LG텔레콤은 서둘러 010으로 통합해 기존 2G(2세대) 장비 철수를 앞당기고 '번호의 브랜드화'를 끝내야한다고 맞서고 있다. 다급한 쪽은 KT다. KT의 2G 가입자는 125만명 수준이다. 그러나 2G 서비스가 사용하는 1.8㎓ 주파수의 사용시한인 내년 6월까지 가입자를 3G로 전환하지 못하면 주파수 재할당과 망 유지보수에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KT는 010번호 통합이 강제로 이뤄지기 힘들다면 그 대안으로 010번호 변경 표시 서비스와 같은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번호통합 정책에 역행하는 서비스일 뿐만 아니라 이미 010으로 전환한 가입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분간 통합 없다
휴대전화 01X가입자는 당분간 현재 번호를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가 010가입자가 95%를 넘기 전까지는 강제로 통합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최근 번호 통합 시기로 010번호 전환률 상승폭이 1%포인트 미만일 때 추진하는 이용자 기준 방안과 사업자의 2세대(G) 망 운영의 비효율이 발생하는 시점에 통합하는 사업자 기준안을 제시했다. 이용자 기준 안을 적용할 경우 010번호 전환율 증가율은 2012년 3분기 이후 0.9%p로 떨어진다. 2014년 3분기에는 010번호전환 증가율이 0.4%p로 떨어지고 010가입자 비율은 95.9%에 이르게 된다. 번호전환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01X가입자가 얼마 남지 않는 2014년 말은 돼야 강제로 번호통합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전히 01X번호로는 3세대(3G)에 가입할 수 없고 보조금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기존 01X가입자의 불만은 지속될 전망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강제로 통합할 지, 사업자 자율로 맡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상반기까지 관련 방안을 마련해 위원회 안건으로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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