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봄비 갠 아침에

봄비 갠 아침에

김수장

봄비 갠 아침에 잠깨어 일어보니

반개화봉(半開花封)이 다투어 피는고야

춘조(春鳥)도 춘흥(春興)을 못 이기어 노래 춤을 하느냐.

'밤새 봄비가 내리다가 개인 아침에 잠깨어 일어나 보니 / 반쯤 핀 꽃봉오리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구나 / 봄날의 새들도 봄의 흥취를 못 이겨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냐'라고 풀리는 노가제(老歌齊) 김수장(金壽長)의 작품이다.

봄이 오는 풍경을 보이게 하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리게 하는 작품이다. 초장의 비, 중장의 꽃, 종장의 봄철의 새를 앉힌 이 작품은 그 구성이 참 절묘하다. 비는 하늘의 것이며, 꽃은 땅의 것이다. 그리고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나르는 것이다. 짧은 시조의 형식 속에 온 우주의 변화를 다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조의 형식이 짧아도 다 담지 못할 것이 없음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봄은 꿈틀거림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모두 동작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초장에서는 잠깨어 일어나고, 중장에선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종장에선 새들이 노래하고 춤을 춘다. 작품에 쓰인 시어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표현이 하나의 이미지로 통일되어 나타날 때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조 창작의 전범이 될 만한 작품이다.

중장에서 꽃도 활짝 핀 꽃이 아니라 반쯤 핀 꽃이다. 활짝 핀 꽃보다는 꽃봉오리를 반쯤 연 것이 봄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많은 꽃들이 피어나니까 다투어 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 그리고 꽃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봄철의 새들이 날아다니며 우니까 봄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이면 새가 춘흥에 젖은 것이 아니라 새소리를 듣는 사람이 춘흥에 겨워지는 것이다.

봄이 왜 봄이냐는 질문에 봄이 되면 볼 것이 많아 '봄'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그 말을 긍정하게 된다. 이 볼 것 많은 봄에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꽃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봄철의 새소리를 듣는 것도 해로울 것 없지만, 보이지 않는 삶의 희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꽃이 피어나듯이 꿈이 피어나고, 새소리처럼 싱그러운 봄을 닮은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김수장 문무학 ·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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