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아름다운 발

아이가 모서리에 발가락을 짓찧었다. 날카로운 통증에 눈물 한 방울 톡 떨어뜨린다. 같이 방바닥에 주저앉아 짓찧은 부위를 만져준다. 아프다며 기겁을 한다. 엄지발가락 끝이 발갛다. 다행히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다.

요즘 나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람의 발을 만나고 있다. 발레리나 강수진, 축구 선수 박지성, 최근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의 발까지. 어디 그뿐인가. 일일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면 치열하게 걸어온 발들이 어디 한둘일까.

발은 양말이나 신발 속에 갇혀 있어 좀체 그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음지에 숨어서 노동을 묵묵히 견딘다. 가장 많은 일을 하면서도 대가는 최소한으로 누린다. 나는 언젠가부터 발이 주는 경이로움에 빠져 있다. 그것의 시초는 아마도 발레리나 강수진이었던 것 같다.

수개월 전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내 눈은 한 장의 발사진 앞에서 멈췄다. 발이 내 마음을 잡아당겼다. 모니터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사람의 발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옹이 진 발가락은 휘어서 뒤틀렸다. 변형된 엄지발가락과 닳아버린 발톱, 그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가 나면 그 부위에 소고기를 붙이고 토슈즈를 신었다. 토슈즈만 신으면 아픔을 잊었다. 박지성과 김연아 선수도 마찬가지다. 굳은살과 피딱지가 앉은 발에 축구화를 신고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멍이 가실 날이 없었고 힘줄은 툭툭 불거졌다. 그런데도 축구화와 스케이트화를 신기만 하면 몸에서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그들은 그 길을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두렵지 않았고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이란 시의 한 구절처럼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걷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걸음으로써 수반되는 통증도 무시할 수 없다. 외로움도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가끔 아이의 발을 지압해 준다. 아직 덜 자란 발, 꾹꾹 눌러주며 이 발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체 중에서 가장 무딘 곳 같지만 살짝만 짓찧어도 그 아픔이 머리끝을 관통할 만큼 예민하기도 한 곳, 인생이란 긴 항해에서 무디어지고 단단해져 아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아픔마저 행복하도록, 이 엄지발가락이 방향키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 모든 길의 완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닳고 깎이고 멍들면서도 치열하게 견뎌온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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