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째 같은 일을 하지만 항상 긴장됩니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28년 경력의 베테랑 관제사 김세권(47·제11전투비행단) 준위는 "내 판단에 따라 수백명을 태운 비행기가 움직인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인터뷰 내내 쌍안경을 들고 활주로 구석구석을 훑었다. 얼마 전 폴란드 대통령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관제사의 회항 지시를 어기고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대형 참사를 빚은 사고가 있은 뒤부터는 더욱 긴장의 고삐를 다잡는다.
김 준위는 초등학생 때부터 인생의 항로를 관제사로 정했다고 한다. "하늘에는 일정한 길도 없고 신호등도 없는데 항공기들이 어떻게 부딪히지 않을까 늘 궁금했어요." 스무 살이 되던 해 공군 부사관에 입대, 본격적으로 관제사의 길을 걸었다.
30년 가까이 하늘 길을 열면서 웃지 못할 직업병이 많다. 수십년째 항로를 정하는 일을 맡다보니 택시를 탈 때도 경로를 일러줘야 직성이 풀린다. 만성 소화불량 역시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쉴 새 없이 비행기가 뜨고 내려 도시락으로 때늦은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느긋하게 식당가는 타부서 동료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습니다."
휴일근무에 대한 아쉬움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다. 오히려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하늘길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내가 고생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휴가를 보내겠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합니다. 마치 나 스스로가 거친 바다에서 조난당한 배를 위해 든든하게 비춰주는 등대의 불빛이 된 것 같아요."
이 때문에 관제사를 선택한 일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높은 곳에서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관제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김 준위는 "귀환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항공기가 관제사의 유도로 안전하게 착륙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모른다"며 "꼭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번 더 삶을 산다고 해도 관제사를 할거에요. 지금도 창공을 향해 솟구치는 비행기를 볼 때면 가슴이 요동칩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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