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중간고사Ⅰ

잘쳐도 못쳐도 쉬워도 어려워도 영원한 부담

♥ 시험지만 받아들면 초긴장

형형색색의 꽃들이 자태를 뽐내는 희망찬 봄이 한창일 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중간고사'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면서,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 조금만 더 분발해서 성적을 올리라고 하고, 축구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멀티형 인간이 되라고 하니 참 모순이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중간고사를 치를 때였다. 번번이 시험지를 받아들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아는 문제를 틀려서 속상해하곤 해서 도와줄 길을 궁리하곤 한다. 아이는 열심을 다해 공부하고 난 정성 들여 시험기간 내내 기도를 했다. 그게 통했는지 그때 성적은 목표치를 훨씬 능가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후에 결과를 하늘에 맡기는 것,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자신이 뿌린 걸로 결실을 맺는 것이 바른 수험생의 자세다.

한 학년을 보면 중간고사가 봄에 해당되고 인생 전체로 보면 학창시절이 봄에 해당되는 것 같다.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대부분의 장래가 판가름난다고 본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듯이 공부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법. 요령 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효행의 덕목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밝고 맑아야 할 아이들의 얼굴이 시험 성적 때문에 일그러진다 싶어서 기분이 씁쓸하다.

그래도 엄마니까 또 기대하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욕심을 좀 버리면 아이도 엄마도 더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최순단(대구 수성구 만촌2동)

♥ 친구와 커닝하다 들켜 0점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으로 거슬러 가본다. 여느 아이들처럼 노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던 그 시절. 중간고사는 항상 내 마음을 콩닥거리게 했다.

왜냐면 커닝과의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하루가 일년 같고 일주일이 몇년같이 느껴졌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중간고사 치기 전 공부 잘하는 녀석들에게 간식거리를 사주며 친하게 지냈었다.

첫날 시험은 가벼운 눈 놀림과 기침 커닝으로 무사히 지나갔다. 둘째 날 시험 또한 답안 바꿔치기로 성공한 나는 더욱더 자신감이 생겼었다. 그러던 셋째 날 수학 시험 때 앞뒤로 발치기하다 걸려서 결국 0점 처리되었다.

하지만 주눅 들진 않았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으니, 아니, 그 당시엔 그런 생각이 안 들 만큼 철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작은 추억이다. 그때 그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술자리에서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커닝에 관한 에피소드가 자주 나온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고 빨개진 내 얼굴색이 다시 돌아오질 않는다. 이제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들어선다. 인생에서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나이인 듯싶다. 추억은 추억으로 묻힐 때 아름다운 것이다.

요즘같이 바쁘고 지쳐가는 우리 수험생들에게 잠시나마 고등학교 시절의 작은 추억을 선물한다. 특히 경기도 어렵고 사는 것도 힘든 대구 사나이들에게 파이팅이란 말을 전한다. 윤흥기(대구 남구 대명2동)

♥ 시험기간 우리집은 살얼음판

4월 말에서 5월 첫째 주에 치르는 중간고사. 중간고사 준비 기간의 우리 집 주말 분위기는 살얼음판 그 자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자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이럴 땐 시험 자체가 원망스럽다. 엄마 마음이 이 정도인데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내 아이들이 시험을 치는 학생이 되고부터는 결혼 기념일의 달콤한 분위기와 추억은 말 그대로 추억의 언덕 저편으로 떠나보냈다.

작년 결혼 기념일에도 나의 눈빛에서는 1천℃가 넘는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나의 강력하고 따가운 눈총을 온몸으로 맞았던, 어린이날에도 중간고사 준비로 집안에 갇혀 공부만 했던 아이들에게 뿜어졌던 눈길이 2008학번으로 쓰여진 나의 전공 교재와 참고 문헌으로 쏠렸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하나 더 생겨 공부라는 것을 해보고 또 시험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치러보니 지난날 우리 아이들에게 가했던 만행(?)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공부와 시험이라는 것은 잘하면 잘하는 대로 힘들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힘든 것임을 세월이 한참 지나 나 스스로 공부를 해보니 알게 되었다.

이번 주 주말에 딸아이와 도시락을 준비해 인근 도서관에 중간고사 공부를 하러 갈 예정이다. 딸은 만학도인 엄마를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힘든 공부를 시작했는지를 묻고 있다. 중간고사 준비로 눈이 퀭하게 들어간 이 엄마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런 딸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사랑스럽다.

사랑스런 아들 딸아! 이번 학기 중간고사, 엄마랑 함께 열심히 해보자. 파이팅!!

김수남(대구 수성구 범어3동)

♥ "80점 넘으면 아이스크림 사주마"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셨다. 학기 초부터 영어 수준을 학교 내 최고로 만들어 보겠다고 잘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첫 모의고사에서 다른 반 영어평균 점수보다 못한 결과가 나오자 선생님은 무척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초콜릿도 녹여버릴 만한 아주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될 무렵 중간고사 시험기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번엔 너희들만 믿는다 하시며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중간고사 영어 반평균 점수가 80점을 넘을 경우 모두에게 유명 회사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겠다는 멋있는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이스크림보다, 에어컨보다 깊은 잠이 더 간절했기 때문에 중간고사 영어시험을 엉망으로 보고 말았다.

아무도 아이스크림을 바라지 않은 채 중간고사가 끝나고 처음 영어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우울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한 상자와 또 다른 한손에는 시험지를 들고 오셨다. 조금 실망하신 듯했지만 60명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수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며 힘이 되는 말씀을 한마디씩 해 주셨다. 우리 반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이 쓰게 느껴진 것은 중간고사 영어시험을 너무 못 봐 죄송한 마음과 선생님의 자상한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때 선생님이 사 주신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보관하고 있다. 선생님! 그때는 말 못 했는데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오늘따라 중간고사 영어시험을 너무 못 봐서 선생님을 속상하게 만들었던 대구영신고등학교 3학년 2반 친구들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류재필(대구 달서구 성당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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