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의 한 식당에서 서빙일을 하고 있는 새터민(탈북자) 김선영(가명·37·여)씨는 이직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6개월 전 취직했을 때만 해도 99㎡ 남짓한 식당은 제2의 고향과도 같았다.
"강원도 사람이나 다름없지"라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주인 아줌마와 친자매처럼 대해주던 동료들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러나 이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최근 불어 닥친 해군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가슴 졸이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 요즘 왜 그래. 역시 구제불능이야." 단골손님이 농담 삼아 던지는 말이 김씨의 가슴에 가시가 되어 박힌다. 김씨는 "목숨 걸고 한국에 왔지만 손님들이 '북한, 북한' 할 때면 꼭 죄인이 된 것 같다"며 "동료들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연이어 터지는 북한발 악재로 새터민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는데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를 노리던 북한 암살조 요원들이 검거됐기 때문이다.
대북지원사업을 벌이는 민간외교 단체들도 최근 일련의 사태가 대북 교류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에 따르면 대구의 새터민들은 550여명 정도. 한 해 120명씩 대구에 정착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요즘 생활이 어느 때보다 힘겹다고 호소하고 있다.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북한에 남겨둔 가족을 태우러 가겠다는 꿈을 품고 운송업에 종사 중인 이경일(가명·44)씨도 가시방석 생활을 하고 있다. 끼니 때마다 식사를 함께했던 동료 기사들이 어딘가 모르게 서먹서먹해졌다. 이씨는 "천안함 사태로 온 국민이 비통해하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수년간 친하게 지내왔던 동료들이 시선을 피할 때면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새터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때마다 새터민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2002년 연평해전 때도 '북한다워. 잘해 줄 필요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한 새터민은 "아직까지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없어 그나마 맘이 좀 놓인다"며 "하지만 북한이라고 확인될 경우 남한 사회에서 어떤 냉대를 받을 지 벌써부터 두렵다"고 말했다.
민간 대북교류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 역시 북한 어린이 돕기 빵, 내복, 연탄 사업 등 다양한 민간 차원의 대북사업이 펼쳐지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사업이 주춤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북 내복 지원사업을 3년째 해오고 있는 남북평화나눔운동 김두연 사무처장은 "내복 사업이 기금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앞으로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북 교류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 허영철 소장은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들은 한달가량 철저한 심사를 받기 때문에 간첩일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며 "남북 관계에 상관없이 이들은 모두가 한 동포이고 우리의 이웃이라는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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