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과 김치는 우리네 반찬의 너른 평야와 높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김장 김치는 백두대간이라 할 만하고 볼품은 없어도 열무김치는 맛의 품새가 만만치 않아 낙동정맥에 해당된다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성싶다.
옛날 농촌에선 콩밭 고랑에 씨를 넣을 때 옆줄에 열무 씨도 함께 뿌렸다. 열무는 콩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콩이 자라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비 맞은 열무가 잘 자라야 빨리 김치를 담글 텐데." 어머니는 열무에 거는 기대를 그렇게 표현하셨다.
홀어미 밑의 다섯 남매의 입은 '불 잘 드는 아궁이의 청솔'처럼 무엇이든 뚝딱이었다. 그 책임이 서른 초반에 청상이 된 어머니의 몫이었으니 남새밭에 상추씨를 뿌릴 때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줄 때도 "어서 빨리 커라"며 기도 아닌 기도를 그렇게 중얼거리셨다.
◆뿌리 씹히는 아싹아싹한 맛 일품
어머니의 희원 속에서 자란 열무들이 보기에도 탐스럽게 뿌리가 하얗게 드러날 즈음이면 식탁은 한결 풍성해진다. 된장을 중심으로 한 푸성귀들의 잔치에 열무가 새 식구로 추가되기 때문이다. 순백의 뿌리가 입안에서 씹히는 아싹아싹한 맛도 일품이지만 불그스레한 김치 국물은 밥을 말아도 좋고 삶은 타래 국수를 넣어 먹어도 별식이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초여름 저녁에는 어머니가 큰 양푼을 들고 밥상 앞에 앉는다. 미리 쑹덩쑹덩 썰어온 군둥내(군내의 사투리)가 살짝 나는 열무김치와 보리밥 위에 끓인 된장을 끼얹어 비비면 멋진 열무김치 비빔밥이 된다. 항아리에서 잘 익은 고추장 한 숟갈을 푹 떠서 함께 비비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중학교 일학년 때 일이다. 대봉동에 방 하나를 얻어 누나들과 함께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도시락 반찬은 된장에 박아 둔 고추에 단무지가 고작이었다. 주말을 고향집에서 보내고 아침 통근열차를 타러 나가는데 어머니가 작은 '옹추마리'(작은 옹기의 고향 사투리)에 질그릇 뚜껑을 덮은 보따리를 내주면서 "단디 들고 가거라. 열무김치 들었다"고 하셨다.
◆신줏단지 모시듯 안고 버스 올랐지만…
'자취방에서도 열무김치를 먹겠거니' 하면서 깨지지 않게 모시듯 안고 열차에서 내렸다. 대봉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어찌나 비좁은지 단지를 들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좌석 밑에 밀어넣고 짐짝처럼 밀리다가 겨우 학교 앞에 내리고 보니 아뿔싸! 하늘이 노래져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보물단지를 버스에 두고 내려 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 이럴 수가 있나. 울고 싶었지만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등교도 포기하고 다음 버스를 타고 앞차를 따라 가기로 했다. 그러나 동일한 원을 앞뒤로 달리는 두 개체의 윤회(輪廻)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와 버스가 설 때마다 운전기사를 붙들고 "의자 밑에 넣어둔 김치단지를 본 적이 없습니까" 하고 물어봤지만 "쟤가 어디 아픈가 봐" 하는 투의 눈길만 보낼 뿐이었다.
◆'괜찮다'누나들 위로에도 마음 안 풀려
한 사흘 몸살로 앓아누웠다. 똥이 끓도록 아팠고 땀은 곤죽처럼 흘렀다. 꿈속에서는 잃어버린 김치단지가 손에 잡힐 듯했지만 깨고 보면 허망했다. 누나들은 평소에 주의가 산만한 나를 꾸짖기만 하더니 열이 내리지 않자 찬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주며 "괜찮다"며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내 맘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지금도 그날의 절망을 덮어줄 양으로 나를 위한 위로의 말을 던지면 솔직히 말해 분노부터 앞선다.
하릴없어 심심한 날은 대구역에 나가 대봉동 쪽으로 달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김치단지를 싣고 달아나는 앞차를 쫓아가 보고 싶다. 내 귀에는 "삼덕 대봉 가요"라고 소리지르는 시영버스 차장 아가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세월을 역주행할 수는 없을까. 시방 나는 군둥내 열무김치가 먹고 싶다.
구활(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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