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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사랑=결혼'시대에 우리는…

'사랑=결혼'의 등식이 현대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서구 문화사에서 사랑은 12세기만 해도 궁정의 유희에 불과했다. 결혼은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가문간의 결합이었을 뿐 사랑과는 무관했다.

'사랑=결혼'이라는 낭만적(?) 공식이 엄격할수록 결코 낭만적이라 할 수 없는 '이혼'이라는 현실과 더 자주 부딪혀야 한다는 게 이 등식이 지닌 양가성이다. 불확실한 사랑의 토대에 놓인 결혼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그 불안정성은 남녀 두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요즈음 이혼 법정에서는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는 부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편이 휘두른 칼에 몇 번 찔리기까지 한 아내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런 남편에게 세 아이를 맡기고 자신만 나오겠다는 대목에 이르면 차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 자식은 안 찔러요' 라는 퉁명스런 대답. 장애가 있는 두 아이는 맡지 않겠다면서 현재 살고 있는 임대주택이 전 재산인 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비해 법정 양육비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나 월 30만~40만원을 넘기기 어렵고 그나마 꼬박꼬박 지급되는 경우도 드물다. 지난해 말부터 월급에서 바로 지급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었지만 봉급생활자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사교육비를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이다. 그래서인지 영어, 수학, 피아노 등의 학원비를 깨알같이 적어 몇 십 원까지 상세하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으나 실제로는 어림도 없다.

저출산 대책을 고심하던 서울의 한 구청이 아이를 낳으려면 결혼부터 해야 하지 않는가란 생각에서 직접 중매자로 나섰던 일이 있었다. 남녀 50명씩을 모아 1년여에 걸쳐 몇 차례 만남을 주선한 결과 1쌍이 결혼해서 1명의 아이를 출산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그 한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들인 비용과 정성을 생각한다면 태어난 이후의 그 아이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 무심한 게 아닐까.

저출산 대책들이 공허한 이유 중 하나는 낳으라고만 하고 정작 태어난 아이의 복리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자(子)의 복리를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가족법이 개정되고 있다. 법도 제도도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사랑=결혼'이라는 오늘날의 사회적 합의는 '사랑=>결혼', 다시 '결혼=>사랑'이라는 양방향성이 균형 있게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이룩된 것일 것이다. '사랑=>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열정만큼 '결혼=>사랑'에도 동일한 함량의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사랑=결혼'이라는 등식이 지닌 진정한 낭만성인 것은 아닐까.

변호사 김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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