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친부모같은 스승님 친자식같은 제자들

1959년 삼덕초등 졸업생들 자식없는 외로운 은사위해 찾아와

50년 대구 삼덕초교 시절 한없는 사랑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정태흠(83)옹 부부에게 60대가 된 제자들이 찾아와 큰절을 하고 있다.(오른쪽이 정옹 부부)
50년 대구 삼덕초교 시절 한없는 사랑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정태흠(83)옹 부부에게 60대가 된 제자들이 찾아와 큰절을 하고 있다.(오른쪽이 정옹 부부)

5일 경남 창녕군 실버타운. 3년째 이곳에서 요양 중인 정태흠(83)옹은 가슴이 들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몸을 깨끗이 씻고, 머리를 빗고 가다듬었다. 옷도 깔끔하게 다려 입었다. 초등학교 때 가르친 제자들이 찾아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11시쯤 한아름 선물꾸러미를 든 13명의 제자들이 요양원에 도착했다. 1958년 대구 삼덕초등학교의 6학년 1반 제자들. "내 눈엔 다 개구쟁이 학생으로밖에 안 보여. 자식이기도 하고…."

스승은 넉넉한 미소로 제자들을 맞았다. 정옹은 "5학년, 6학년 두 차례 이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다"고 했다. 제자들의 머리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렸고 6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세월은 쏜살같지만 사제지간의 정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지."

요양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제자들은 50년 전 대구 삼덕초교 시절 은사와 함께한 추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선생님 댁에 우르르 몰려가 신천에 고기 잡으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3년 전 교편을 놓고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박순해(65)씨는 동심으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댁에 가면 사모님이 삶아주시던 감자와 옥수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온 정옹은 40여년간 '참 스승'의 길을 걸었고 제자들은 장성해 스승을 정성스레 돌보고 있다. 제자들은 자녀가 없는 정옹 부부의 아들딸을 자처했다.

대기업 사장인 이원인씨는 "선생님은 항상 가지런한 삶을 살라고 학생들을 지도하셨고 몸소 실천해 오셨다"며 "아직도 제자들이 찾을 때면 넥타이를 매고 맞으실 정도로 매사에 반듯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스승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항상 집으로 불러 별도로 공부를 가르쳤다. 스승의 열정 덕분이었을까? 제자들은 대기업 사장부터 의사, 교수, 공인회계사, 교수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라지. 교육도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제자들이 다들 훌륭하게 자라주고 매번 이렇게 찾아줘 너무 고마워."

제자들의 스승 사랑도 끝이 없다. 정옹의 회갑때는 부부를 서울 호텔로 모셔 회갑연을 열어 드렸고 여행도 보내드렸다.

그러나 제자들은 점점 세월의 무게에 힘들어하시는 선생님을 볼 때면 눈물이 고인다.

"약을 10가지나 드신다는데…. 선생님께서 우리 제자들에게 베풀어 준 큰 은혜에 보답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오래오래 사셔서 끝까지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봐 주시는 게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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