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안동의 여러 집에서 소주를 고는 방법이 전승돼 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가양주 제조금지령에 의해 전승이 단절되다시피 했다. 당시까지 안동소주는 배앓이(복통),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는 약용 술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안동소주가 대중들에게 널리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공장에서 상품으로 생산되면서부터이다. 일제 강점기 안동시 남문동에 설립된 '안동주조회사'에서 '제비원표' 소주를 양산해 서울·만주·일본 등지로 판매했다. 이 술이 안동소주로 알려지면서 그 명성이 확산된 것이다.
안동주조회사 설립자는 한말 안동 지역의 최대 부호였던 국담 권태연(1880~1947)이다. 안동 사람들에게 최대의 홍수로 기억되는 1934년의 일명 '갑술년 수해' 때에는 쌀 500가마니를 쾌척하였다고 하니 재력을 짐작할 수 있다. 권태연은 안동마포동업개량조합을 설립한 데 이어 안동주조회사를 설립한 근대적 사업가였다.
안동주조회사에서 생산한 제비원표 안동소주가 널리 판매된 이후부터 1971년까지 안동에서는 선어대소주, 금곡소주 등의 상표를 붙인 소주가 생산됐다. 이러한 안동소주는 광복 후 국가의 양조정책 변화에 따라 쇠퇴했다. 1965년부터 순곡주 제조가 금지됨으로써 증류식 순곡주였던 안동소주는 생산이 중단됐다.
오늘날 조옥화 할머니를 중심으로 생산하는 민속주 안동소주는 무형문화재 정책에 의해 새로운 상품으로 거듭난 안동 지역의 술이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주 안동소주는 일제 강점기의 안동소주와 달리 황국(黃麴)으로 빚은 술이라는 점이 그 근거이다. 따라서 민속주 안동소주는 안동 지역 가양주 소주의 양조 전통을 되찾는 방식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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