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남성과 여성은 뇌 구조부터 사고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쇼핑'에 있어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여자들은 백화점을 기본 몇십바퀴쯤 돌아야 만족할 만한 쇼핑을 즐겼다고 생각하지만, 남성들에게는 쇼핑이 '전쟁에 나가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냥하는 남자, 채집하는 여자
"여자들은 탐색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한번에 끝내기를 좋아한다." 엘리자베스 페이스가 쓴 '쇼핑의 심리학'이라는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
쇼핑에 있어 남녀 차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남자들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 외부 집중 성향이 강하며, 여자들은 자녀의 양육과 채집 활동을 맡았기 때문에 주변을 살피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이런 성향이 진화적으로 유전되면서 여자들은 미로 같은 쇼핑몰을 신나게 누비며 여러 사람을 위한 다양한 물품을 한꺼번에 쇼핑하는 것을 즐기게 된 반면, 남성들은 자신이 꽂힌 한 물품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미국 미시간대 대니얼 크루거 박사의 연구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크루거 박사는 "467명의 대학생을 동원한 실험을 통해 남녀의 쇼핑 태도와 기술에 옛 조상의 사냥과 채취 생활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며 "남자가 같은 종류의 상품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지 못하고 여자가 매장의 에스컬레이터 위치를 잘 기억 못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쇼핑을 즐기는 여성
어떤 조사에 따르면 남자들의 69%는 특별한 물건이 꼭 필요할 때 사겠노라고 했다. 쇼핑을 즐긴다고 대답한 사람은 31%뿐이었다. 반면 여자들의 58%는 뚜렷하게 살 품목이 없어도 둘러보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쇼핑 시간에는 큰 차이가 난다. 영국 백화점 업체 '데벤함스' 연구진에 따르면 남자 5명과 여자 5명에게 각각 만보기를 차게 하고 쇼핑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들이는지를 추산했더니 여성은 한번 쇼핑을 나가면 거의 5㎞, 2시간 30분 정도를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남성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쇼핑시간이 50분 정도에 그쳤고, 걷는 거리도 2.5㎞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윈도쇼핑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이 과정에서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사 두면 좋을 만한 물건'을 탐색해 미리미리 쇼핑을 해 두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그래서 여성매장에는 단순히 의류만 진열돼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액세서리 코너와 핸드백, 구두 등을 같이 진열하는 양념(Spice) MD가 뜨고 있다. 말 그대로 양념처럼 쇼핑을 즐기는 고객들이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덕분에 여성들은 더 많은 정보를 스캔하고, 내게 적합한 물건인지를 탐색할 수 있게 됐다.
또 여성들의 경우에는 관계적인 가치를 중요시하고 주변 단서에 좌우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입소문 마케팅'에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우뇌가 발달한 여성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감성이 더 발달하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성향이 남성보다 강하다고 한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남성
백화점이나 아울렛의 남성 정장 매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매장에 비해 2∼3m 더 깊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이는 남성 정장의 경우 충동구매보다는 계획구매가 많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남성들은 여러개의 매장을 둘러보며 비교 분석하기보다는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매장으로 곧장 직행해 빠른 시간 안에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선택한다. 대백프라자 관계자는 "이런 남성들의 쇼핑 패턴을 고려해 고객이 한 매장 안에서 곰곰이 고민하며 선택할 수 있도록 일부러 매장 내 동선을 깊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쇼핑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반감되기 때문에 쇼핑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고역일 뿐이라고 한다. 한국 남성들은 유독 쇼핑 기피증이 심하다. 경제발전 시대를 살아왔던 대다수의 남성들은 밥벌이에 치중하느라 패션 등에 익숙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고, 패션에 관심을 갖고 꼼꼼히 따지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이라는 가부장적 가르침에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에서는 '남성전용 백화점'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이세탄 백화점 멘즈관과 마루이 멘즈, 파리 라파엣트 옴므 등 다른 나라에서는 남성 전용 백화점이 성업 중이고, 적극적으로 쇼핑을 즐기는 남성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일인 것. 최근 롯데닷컴에서 '롯데맨즈닷컴'을 통해 남성전용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한 정도에 그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예전보다 남성 고객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맞지만 아직 백화점을 채울 정도는 아니며 1개 층 정도로 충분히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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