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에 지역감정 혹은 지역에 따라 상이한 정치적 정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일찍이 저명한 정치학자인 키이(V.O.Key, Jr.)가 갈파했듯이 "모든 정치는 지역(특수)적이다"(Every politics is local). 물론 지역적인 차이의 정도나 지역 간 갈등의 크기는 국가별로 상이할 수 있겠으나 지역정치의 존재는 미국에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대체로 동부, 서부, 남부, 중서부 및 내륙 산간부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들 모두가 나름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지역 중에서도 남부가 가장 도드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남부는 미국 헌법 제정 때부터 여러 문제로 북부와 갈등 상황에 있었다. 예컨대 연방 하원의원 수를 확정하기 위한 인구 수 산정에서 남부 주들은 흑인 노예를 인구 수에 포함시키기를 원했고 결국 '흑인 노예 1인은 백인의 3/5인'이라는 소위 '위대한 타협'(Great Compromise)을 이끌어낸다. 노예 문제를 둘러싼 남북의 갈등은 결국 남부 주들의 연방 탈퇴에 이은 내전(남북전쟁, 1861~1865)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다. 1950~60년대의 흑인들의 민권(Civil Rights) 확보를 위한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 또한 남부 여러 주들에서 실행되고 있던 짐 크로 체제(Jim Crow System)하에서의 "분리평등원칙"(separate but equal doctrine)의 폐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남북 전쟁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남부 백인들은 예외 없이 민주당을 지지했으며 이 시기 남부는 사실상 민주당 일당 지배체제였다. 이 기간 동안 남부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경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거의 모든 선출직 공직 선거에서 민주당 내부의 경선이 사실상의 결선이나 다름없었다. 예컨대 1950년 선거 결과, 남부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은 한명도 없었으며 105석의 남부에 배정된 하원의석 가운데 단 2석만이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채워졌었다. 민주당은 1955년부터 1994년까지 40년 동안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민주당의 하원 지배는 남부에서의 경쟁 없는, 압도적인 승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남부 공화당의 부상』은 남부 주에서의 정치적 변화의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이다. 얼 블랙과 멀 블랙은 일란성 쌍둥이 형제로 각각 남부의 명문 사립대학인 라이스(Rice)대학과 에모리(Emory)대학의 석좌교수로서 키이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남부 정치 연구가로 인정받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소위 '공화당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1994년 선거에 주목한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 양원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것은 상원의 남부의석 22석 중 13석, 하원 남부의석 125석 가운데 71석을 확보한 남부에서의 공화당의 약진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은 북부와 남부 모두에서 상하 양원의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다. 이러한 공화당의 남부에서의 상하 양원 지배는 1872년 이후 최초의 일이다. 명실공히 민주당 일당 체제였던 남부가 공화당과 민주당이 경쟁하는 양당 체제로 변환된 것이다.
남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는 1980년 레이건 대통령(공화당) 시기부터 가속화된 보수적 남부 백인들의 공화당으로의 이탈이 한 원인이다. 주지하듯이 인종적,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 보수적인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을 찾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었다. 그러다 보수적인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낸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을 통해 자신들의 지지 정당을 비로소 공화당으로 변경한다. 남부에서의 정치적 변화의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구 이동이다. 기후가 온화한 남부 주들은 부유한 은퇴자들의 새로운 안식처가 되었으며, 도시화(?), 산업화의 진행은 유능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들은 모두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다.
남부에서의 이러한 변화를 통해 미국 정치의 역동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오랜 기간 동안 민주당이 지배했던 남부에서의 지역 정치가 붕괴되면서 정당 간 경쟁의 전국화가 이루어진 결과다. 길게는 남북전쟁 이래 14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일이다. 여러 분야에서 압축·성장해 온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 선진화 혹은 정당 간 경쟁의 전국화라는 과제를 얼마만큼이나 압축·발전해 낼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