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이 가까워 질수록 인민군 주력부대는 남진을 서둘렀지만 북쪽으로 후송되는 부상병들의 수도 늘어났다. 특히 부상당한 군관·전사들 중 중환자는 앰뷸런스 한 대 구하지 못해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국군포로나 납북인사들을 운반 일꾼으로 동원하여 들것에 실어 후송하고 있었다.
하지만 팔·다리와 머리를 다친 부상병들은 민가에서 노획한 광목천으로 상처 부위를 감은 채 팔걸이를 하거나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부상병들을 치료해야 할 간호군관이나 위생전사들마저 중상을 입고 들것에 실리기도 했다.
북한 공산군이 남진할수록 전황은 예상외로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미 낙동강 인근 이화령이나 화령장 전투에서부터 국군의 화력이 엄청나게 증강되었다는 사실도 감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북상하는 국군 포로와 납북 인사들의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중죄인처럼 포승에 묶여 개 끌리듯 끌려가고 있었다.
국군 포로들은 대부분 생포 당시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이 피멍이 들거나 심한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고 납북 인사들 역시 얼굴과 온몸이 상처투성이었다. 마치 짐승처럼 끌려가는 국군 포로들의 가슴에는 '국방군 포로', 납북 인사들 가슴엔 '반역자' 또는 '반동·반혁명분자' 등의 인식표가 붙어 있었다. 선전·선동용이었다.
또 북한 출신 납북 인사들은 '월남반동'이라는 나무 팻말을 개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있었다. 그들 북한 출신 납북 인사들은 대부분 광복 후 38선을 넘어 월남한 사람들로 공산군의 점령지역에서 준동하는 남로당 프락치들에 의해 검거된 자들이라고 했다. 그들의 비참한 행렬 양쪽에는 따발총으로 무장한 내무서원들이 빈틈없이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었다.
한편 선두의 북한군은 낙동강변인 상주군 낙동면 낙동리까지 진출했다. 강영만은 개전 이래 처음으로 낙동강으로 진출한 북한 공산군 군관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뻘건 황토물이 소용돌이치는 낙동강이 북한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춤하는 사이 "강을 건너 주력 부대의 예인공작을 추진하라"는 사단 작전부의 정치명령이 빗발쳤다. 도하작전에 나서야 할 곳은 바로 그가 서 있는 낙동강 중류.
강 건너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를 이어야 하는 하폭(河幅)은 500여m나 되었다. 도하 장비가 없어 부교를 설치하거나 배를 띄운다는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단 작전부에서는 낙동강 동서 양안(兩岸)에 로프를 설치, 전사들이 로프에 매달려 도하작전을 감행하도록 예인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장맛비로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무모하게 뛰어들어 헤엄쳐 건너다가 자칫 익사하기 십상이었다. 예년 이맘 때에 비해 유달리 궂은 날이 많아 비가 오면 으레 강물이 범람하고 급류를 이루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사단 작전부에서는 특수공작대의 향도가 늑장을 부리고 있다며 즉결처분하겠노며 닦달했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그는 수영에 자신이 있는 대원들을 찾아 봤으나 하나같이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는 낙동강에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야 했다. 즉결처분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교적 물살이 약한 낙동리 강안에 큰 말뚝을 박아 2개의 로프를 고정시켜 놓고 그 로프의 끄트머리를 양쪽 어깨에 감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중에 힘이 부칠 것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유속(流速)을 타고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기면서 천천히 헤엄쳐 나갔다. 거센 물살을 헤치며 강을 한 절반쯤 건넜을 때였을까. 비로소 자신감이 생겨 비교적 여유 있게 헤엄쳐 갈 수 있었고 마침내 강을 건너 낙정리 둑에 말뚝을 박고 로프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로프가 설치되자 선발대인 특수공작대가 먼저 강을 건너고 이어 주력부대가 본격적인 도하작전을 감행했다. 불같이 다그치는 작전부의 독전으로 전사들이 황급히 강을 건너는 바람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줄줄이 로프에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전사들은 강 한가운데로 쏠려 강물이 목에까지 차올라 허우적대며 간신히 낙정리 강안에 도달했다.
거의 1개 대대 병력이 두 줄의 로프에 매달려 한창 도하작전을 감행하고 있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난데없이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을 울리며 4대의 미 공군 F-51 머스탱 전폭기 편대가 나타나 기총소사를 가해 왔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였다. 당초 우려했던 대로 사단 작전부의 무모한 독전에 밀려 위태로운 주간 도하작전을 감행하다가 엄청난 피해를 보고 만 것이다.
로프에 매달려 있던 전사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무더기로 강물에 잠겼다가 다시 솟구치는가 했더니 이내 급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미 전폭기 편대의 무자비한 기총소사에 전사들이 무더기로 수장되는 순간, 마치 붉은 꽃잎처럼 번지는 시뻘건 핏물이 끔찍하게도 소용돌이치는 강물에 쓸려가곤 했다. 얼굴과 목이 달아나고 창자가 튀어 나오는가 하면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등 애먼 전사들은 낙동강을 시뻘건 피로 물들이면서 처참하게 죽어갔다. 이용우(언론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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