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0代 늦깎이 신인 '공주'가 되다…대구출신 소프라노 조영주씨

대구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조영주(42)씨.
대구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조영주(42)씨.

봄에 필 꽃이 초여름에 와서야 피었다. 서른 후반에 유학길에서 귀국, 고향인 대구 무대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하던 40대 초반의 '신인' 소프라노가 끈질긴 도전 끝에 국립오페라단과 예술의전당이 실시한 공개 오디션에서 연이어 합격해 화제다.

예술의전당은 가족오페라 기획작인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공주 역에 대구 출신 소프라노 조영주(42'대구가톨릭대 졸)씨를 최종 선정했다고 이달 14일 밝혔다. 예술의전당 간판 프로그램인 가족오페라는 특히 올해 10주년을 맞아 지난 9년간 계속해 오던 '마술피리' 대신 '투란도트'를 차기작으로 선정한 것이어서 어느 해보다 의미가 각별하다. 조씨는 전체 지원자 80여명 중 8명만이 배역을 따낸 이번 공개 오디션에서 주역을 당당히 꿰찼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투란도트 공주 역은 대표적인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무거우면서 극적인 소리를 요구하지만 가벼운 레쩨로가 대부분인 국내 소프라노 가운데서는 적임자가 매우 드물다"며 "이런 가운데 조영주씨의 발견은 보물을 찾은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투란도트 공주의 아리아는 고음과 저음을 왔다 갔다 하는 음역의 변화가 무쌍해 자칫 목이 상하기 쉬운 어려운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메조 소프라노이던 조씨는 이탈리아 유학시절 동안 소프라노로 전향, 투란도트 공주의 묵직한 저음부를 소화해내는 데 유리했다. "유학시절 은사님이 '아리아 몇 곡만 잘 부르면 되는 콩쿠르보다 오페라 전곡을 부르는 극장 오디션에 치중하라'고 하셨어요. 그 덕분에 다양한 테크닉과 힘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예술의전당이 공연하는 투란도트(8월 14~26일'토월극장)는 더블 캐스팅된 두명의 투란도트 공주가 10여회를 계속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이어서 조씨의 이런 경력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조씨는 지난달 초 국립오페라단이 실시한 '2010 정기공연 선발 오디션'에서도 합격, 화제를 낳았다.(본지 4월 14일자 25면 보도) 작품별 수시 오디션을 해오던 국립오페라단이 성악가를 먼저 뽑는 정기 오디션으로 선발 제도를 전환한 후 가진 첫번째 시험이었다.

조씨의 이번 도전은 적잖은 나이와 지방 출신이라는 여러 핸디캡을 극복하고 거둔 쾌거여서 더 뜻 깊다. 실의의 나날도 많았다. 귀국 후 한동안 무대에 설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푼 꿈을 안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신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중견은 더더욱 아니었고. 대구에선 거의 오디션 기회조차 없었고, 겨우 주역을 따낸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나부코'가 지난 2월 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어요. 서울에서도 최종 오디션에서 여러번 고배를 마셨고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계속 오디션에 도전했고 오페라 무대는 결국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조씨는 "투란도트는 동양인 소프라노들이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배역"이라며 "젊은 성악인들에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꿈을 이룬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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