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승자도 패자도 오랜 고난의 세월을 이겨야 했다. 패전국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부하 아이네아스는 유민들을 모아 다른 곳으로 가서 트로이를 재건하라는 신의 명령에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부하들을 이끌고 앞이 보이지 않는 여정에 올랐다. 부인은 함께 하지 못했다. 6년 간의 긴 항해 끝에 마침내 카르타고에 이르렀고, 디도 여왕이 그를 맞았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여왕은 아이네아스에게 자기와 같이 살면서 나라를 함께 다스리자고 제안했다. 꿈같은 세월 1년이 흘렀다. 이를 걱정스레 내려다보던 주피터가 전령의 신 머큐리를 보내 길을 떠나라고 했다.
본분을 잊고 있던 아이네아스는 여왕 몰래 도망가고, 이를 알게 된 디도는 연인이 두고 간 물건들을 쌓고는 그 위에 올라 그를 향해 외친다. '증오하리라, 저주하노라. 내가 복수를 끝내지 못하면 후손들을 시켜서라도 복수하리라!'고.
그리고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선물로 받은 단검으로 스스로를 찌르고는 불타고 있는 연인의 소지품들 위에 몸을 던진다. 그녀의 저주는 천 년 후 100여 년 동안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카르타고는 벽돌 두 장이 서로 겹치지 않을 정도로 폐허가 된다. 슬픈 사랑의 끔찍한 종말이다.
이다지도 절절하고, 자신의 일신은 물론 나라의 명운까지 갈라놓은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들이 사서에는 심심치 않게 기록되어 있다. 당 현종과 귀비 양옥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등등.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는 듣고 읽기에는 감동적이다. 그렇다고 스스로가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남녀의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신화시대로까지 소급하는 사랑 타령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스턴버그는 둘이 함께 하고 싶은 친밀감, 어려움이 있더라도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헌신, 상대를 향한 그리고 상대를 위한 성적 욕망인 열정을 낭만적 사랑의 특성으로 꼽았다. 이러한 인간의 정신 현상에 물질이 관여한다면 어떨까?
낭만적 사랑에는 성애(性愛)가 필수 요소이다. 성애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고 종의 유지라는 목적을 실천하는 수단이다. 낭만적 사랑을 경험할 때면 뇌 안에서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의 수용체가 풍부다고 생각되는 부위의 활성이 증가된다. 그 부위는 복측피개구역이다. 이 감정은 부정적 정서나 사회적 판단을 관장하는 부위의 활성을 억제한다. 그래서 사랑은 사람을 눈멀게 하나보다.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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