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뷸런스나 구급약 상자에 보면 의료를 뜻하는 상징인 듯한 그림이 있다.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이 바로 그것인데 왜 병을 치료하는 곳에 징그러운 뱀이 있는지 궁금하다. 뱀은 독이 나오는 이빨로 사람을 물어서 죽이기도 하는 해로운 동물이 아닌가? 그런데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조금 이상한 것이 또 있다. 뱀이 한 마리인 것도 있지만 두 마리가 휘감고 있는 지팡이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이름도 다르지만 의미는 더욱 다르다.
먼저 한 마리 뱀이 지팡이를 둘둘 말며 올라가는 것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라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의술의 신인 만큼 그 지팡이는 의학의 상징으로 쓰이며 뱀과 지팡이에 얽힌 대표적인 신화는 이렇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고린도(코린트)의 왕을 살리려고 치료하던 중 뱀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서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러 그 뱀을 죽였다. 잠시 후 또 한 마리의 뱀이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에 올렸는데, 그러자 죽었던 뱀이 다시 살아났다. 이것을 본 아스클레피오스가 뱀이 했던 대로 그 약초를 고린도 왕의 입에 갖다 대어 그를 살려냈다. 그리고는 감사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지팡이를 휘감은 한 마리의 뱀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고대에는 의학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됐으나 중세에 들어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사용이 금지됐고, 종교개혁 이후 다시 사용되기 시작해 지금은 미국 등 여러 국가의 의사협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다음으로 두 마리 뱀이 감고 날개까지 달려 있는 지팡이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불리는데 의사 가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평소 날개 달린 모자와 신발을 신고 두 마리의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를 지니고 다녔다. 장사하는 이들의 수호신이 된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지팡이와 두 마리의 뱀은 훗날 상업과 교역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약삭빠른 면이 있어 곧잘 남의 물건을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팔거나 아예 남의 물건을 약탈해서 다른 고장에 팔아먹기까지 했으므로 도둑의 수호신으로까지 불리게 됐고, 더 나아가 죽은 자를 지하로 이끄는 안내자이기도 하였다.
시작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무슨 이유인지 일부 의학 분야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 군의부대의 마크로 쓰이던 것이 우리나라 의무부대의 심벌이 되었고, 지금은 대한의사협회를 포함하여 국내외 여러 의학, 약학, 보건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휘장으로 쓰고 있다. 과연 이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상징으로 어울리는지, '리베이트 쌍벌죄'까지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대한의사협회와 각 단체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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