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당신의 뒤편

아침, 가족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밀물 때가 되기 전까지 오롯이 내 몫인 이 시간이 너무 좋아, 행복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무서운 힘으로 밀려온 돔형 물기둥에 떠밀려 해변 기슭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입니다.

 달콤한 커피 한 잔도, 읽어달라고 보채는 책도, 내속의 나를 꺼내놓을 수 있는 노트북과 마주 앉아있어도 그것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 때문일까요. 아침부터 5월의 비라고 하기에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 감성적인 사람들은 퇴보하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유년의 제가 엄마의 젖가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빨아들이고 있는 시점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엄마 냄새는 언제나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저는 엄마의 냄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집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싶어집니다.

 저는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좋아합니다. 분명 파열음이라, 파열음은 분열이나 파괴와 가까워 마음으로부터 밀어내는 소리인데, 이상하게도 빗소리만큼은 가슴으로 고여 듭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명치끝에 고여 있던 외로움과 그리움의 덩어리들이 순환되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고아입니다. 이 나이에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고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버이날에 두 분의 봉분 앞에 카네이션을 두고 왔습니다. 유년의 제 소원은 부모님과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였지요. 아버지 회갑잔치를 하던 해에 저는 겨우 일곱 살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 소원은 부모님이 젊어졌으면 하는 거였지요. 오죽했으면 해님과 달님에 나오는 동아줄을 빌려 타고 하느님과 면담하고 싶었을까요.

 막내가 열 살을 넘어설 때까지는 살아야지 하시던 아버지, 다행히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지만요, 저는 노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철딱서니 없는 자식이었지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에서 감싸안아주는 일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편에 슬픔이 많다는군요.

 어쩌면 제 부모도 뒤편에 슬픔을 간직한 분이었을 겁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뒤편을 보지 못합니다. 알지만 궁금해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망설이다 감싸안을 기회를 놓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혹여 오늘밤 꿈속에서라도 두 분을 만나게 되면 가만히 뒤로 돌아가 등을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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