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언제든 배울 수 있겠다고 미뤄왔는데 그 '언제'는 아직도 기약이 없다. 배우고는 싶지만 노인을 위한 자전거 교실을 기웃거리기엔 아직 이르고 아이 때처럼 마구 넘어지면서 배우기엔 회복이 늦고 어려울까 두렵다. 왜 어른들을 위한 네발 자전거는 없는 걸까? 무서운 속도의 시대. 느림이 죄악시된다는 건 초등학생도 다 안다. 그러나 자전거는 더 이상 속도를 위한 운송 도구가 아니다.
검찰시보 시절 수사 기록들을 넘기다가 '2'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를 본 적이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범죄가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고는 하나 80대 노인이 도대체 무슨 범죄를? 죄명은 특수절도. 형법상으로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죄로 흉기를 이용하거나 둘 이상이 가담한 절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뉴스에서 보았던 그 노인 소매치기단?
실제 사건은 이랬다. 80대 노인이 훔친 것은 낡은 자전거 1대. 도심 광장 자전거 거치대에 몇 달째 방치된 것으로 끝내 주인은 알 수 없었지만 분실방지용 고리로 거치대에 매여 있었던 것. 그래서 자전거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흉기(?)인 공구용 펜치 사용이 불가피했을 터. 흉기를 이용한 절도임에는 틀림없었다.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그 자전거를 보았다고 했다. 주인이 잊어 버렸거나 버린 것이라고 생각되어 고쳐서 손자에게 주려 했다고 했다. 노부부가 중학생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 했다. 문제의 그 자전거 사진도 있었다. 구멍 뚫린 타이어, 벌겋게 녹이 슨 몸통. 사진으로도 능히 상태가 짐작하고도 남음 직한 그 자전거의 시가는 3천원. 맨 뒷장의 전과 기록을 보았다. 아무 것도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소유예. 분명한 사건, 명쾌한 결론. 그럼에도 자꾸만 그 자전거가 마음을 녹슬게 했다. 어릴 적 읽은 장발장의 빵 한 조각이 남긴 각인 효과일까? 그때는 참 어리석은 빵집 주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빵집 주인이 경찰관에게 자신이 그냥 준 것이라고 이야기해 줬다면 장발장은 더 빨리 부자가 되어서 그 빵집의 빵을 더 많이 사 주었을 텐데. 다시, 그냥 할아버지가 가져가시게 했더라면 손자에게는 30만원, 아니 300만원 못지않은 자전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폐기처분될 3천원짜리 자전거 하나를 두고 경찰에서, 검찰에서 사건을 처리하느라 여러 사람이 들인 노력과 시간과 비용은 그 빵집 주인의 어리석음에 비할 바 아니라 생각되었다.
넘어지지 않게 잡아줄 두 손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두 개의 보조바퀴는 그 두 손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제도이고 사회적 안전망일 것이다. 법과 질서라는 두 바퀴만을 고집하다 그 자전거는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80이 넘도록 그야말로 '법 없이 살 사람'이셨던 할아버지와 우리 사회 조손(祖孫)가정의 문제에 관한 배려와 고려라는 두 개의 보조바퀴가 있었다면 그 자전거는 '함께' 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수로, 건강 지킴이로 경쾌하게 햇살을 가르는 창밖의 자전거들을 보면서 자꾸만 그 자전거 생각이 난다.
변호사 김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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