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년전으로 뚜벅뚜벅'…동성로·계산동 타임머신 골목

대구문화재단이 도시 브랜드 사업의 하나로 매주 토요일 오전과 오후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과 동성로에서
대구문화재단이 도시 브랜드 사업의 하나로 매주 토요일 오전과 오후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과 동성로에서 '옛 골목은 살아있다' 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동성로가 타임머신을 탔다.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막을 올린 동성로 거리는 어느새 1950, 60년대 대구 향촌동으로 날아간다. 저고리 차림의 연극배우가 '여자의 일생'을 부르더니, 물방울 무늬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들이 '빨간 구두 아가씨'에 맞춰 흥겨운 춤을 춘다. 토요일 오후 행인들로 번잡한 동성로(교동 인근)에는 그때 그 시절의 대구가 펼쳐진다. 이달 8일 첫 공연을 시작, 10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동성로와 계산동에서 펼쳐지는 '옛 골목은 살아있다'의 공연 현장이다.

◆대구의 그때를 아십니까

15일 오전 11시,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 앞. 두루마기, 저고리를 입은 한 무리의 민중들 앞에서 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2천만 동포가 1전씩만 모아도 1천300만원의 나랏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때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은 "세달 치 담뱃값 60전을 모아 나랏빚을 갚자"며 800원을 선뜻 내놓는다. 민중들의 박수 소리에 이어 이번에는 태극기를 든 한 무리가 뛰어나와 1919년 3월 대구만세운동을 재현한다. 시위대는 일본 순사의 총검에 쓰러지고, 해설자는"대구고보, 신명학교, 대성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었다"며 침통하게 당시를 설명한다.

'옛 골목은 살아있다'는 대구문화재단이 찾아가는 왈츠 공연과 함께 도시 문화 브랜드 만들기 사업(총 4억3천만원'국비 3억원 포함)의 취지로 1억9천만원을 투입한 '거리 공연'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전광우 극단 CT 대표는 "잊혀가는 대구의 유산을 관객들의 동참 속에 알리자는 게 기획 의도"라며 "지난해 '옛 골목' 사업을 진행한 진골목과 실제 향촌동이 거리공연에 적합하지 않아 2부 공연은 동성로로 무대를 옮겼다"고 말했다.

'옛 골목은 살아있다'의 1부에 해당하는 오전 공연이 교과서에서나 보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교육적 취지라면, 동성로에서 펼쳐지는 2부 공연은 퍼포먼스의 성격이 더 짙다. 중구 동아백화점~롯데백화점 건너편에서 선보이는 '향촌동 그때 그 시절'. 대구 시민들에게는 낯선 거리 공연이지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구경하는 행인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그때 그 시절의 토막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너거 엄마는 고생하는데 니는 정신이 있나, 없나. 참말로."(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중). 콧수염을 단 변사는 방탕에 빠진 아들을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관중들의 박수를 재촉하기도 한다. 법관을 꿈꾸는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는 두부 판을 들고 나와 직접 시민들에게 팔기도 한다. 작은 단상 주변에는 1950, 60년대 선술집 풍경이 펼쳐진다. 카바레 사회자 같은 요란한 복장의 해설자는 "당시 향촌동은 호수, 볼레로, 백록담, 황금마차 등 여러 요리점'술집들이 인기를 끌던 굉장히 화려한 곳이었다"고 소개하고, 때맞춰 '감격시대' '빨간 구두 아가씨' '대구의 찬가' 등이 댄스와 함께 울려퍼진다.

역사 속 유명 인사들도 차례로 등장한다. '나는 누구 누구요' 하는 식으로 아동 문학가 마해송, 시인 구상, 작곡가 박태준,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 유치곤 장군, 화가 이중섭, 양주동 등 대구에서 태어났거나 전후 향촌동 일대에서 예술 활동을 했던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대학생 권기영(23'여)씨는 "공연 시간도 한 시간 이내로 비교적 짧고, 흥겨운 공연으로 대구 옛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어렵지 않아 좋다"고 했다.

◆도시 문화 브랜드? 글쎄

'옛 골목은 살아있다'는 60여명의 배우, 무용수, 스태프들이 동성로 한복판에서 선보이는 보기 드문 거리 공연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도전이다. 하지만 '도시 문화 브랜드'를 발굴한다는 당초 취지에는 아쉬움이 많다. 행인들이 많다는 이유로 휴대폰 가게, 화장품 가게 등 각종 상점들로 번잡한 동성로에서 옛 골목을 알린다는 구호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관람 장소가 협소하고, 행인들의 주목도도 떨어져 보인다. 차라리 국채보상운동공원이나 경상감영공원 등 배경이 어울리는 곳으로 장소를 옮겨 보는 것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싶다. 대구문화재단 측은 "이상화 고택 앞에서 열리는 1부 공연 경우 고교생 등 단체 관람객들이 찾아와 호응이 좋다"며 "다만 2부 공연은 장소가 옛 골목과 거리가 먼 감은 있지만, 장소 제약 때문에 불가피하게 교동 인근으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병고기자 cbg@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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