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고등어를 추모함 / 강문숙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고등어를 칼로 내리친다.

파르르, 결의 떨림이 칼자루를 지나

온몸으로 퍼진다. 아침 햇살이

팽팽해지는 공기를 뚫고

푸른 등 위에 내리꽂힌다.

순간, 내 속에 살의가 번뜩인다.

저만치 떨어져나간 고등어 대가리

무얼 저리도 골똘히 생각하나.

비린내를 없애려고

청주 한 숟가락 뿌리다가

얼른 목구멍으로 한잔 털어넣는다.

밤새 내게서 나던 냄새도 만만찮았지.

끓는 냄비 속으로 몸을 던진다.

뜨거울수록 고등어는 단단해진다.

찌개 냄비를 가운데 놓고

밥상 앞에 둘러앉아, 후후 불며

자꾸만 절하는 저 붉은 입들.

며칠 전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요컨대, 시란 '대상과의 몸 섞기' 즉, '대상에 깊이 스며들어 동화되고, 하나 되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끓는 냄비 속으로 몸을 던진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바로 영화 '시'가 떠올랐습니다. 고등어를 다듬다가도 "푸른 등 위에 내리꽂히"는 아침햇살이며, "칼로 내리치"는 순간의 살의를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이 '시쓰기'입니다. 고등어 비린내를 통해서도 생의 단내, 실존의 악취를 성찰하는 게 '시'일 테지요. 그러니, "찌개 냄비를 가운데 놓고/ 밥상 앞에 둘러앉아, 후후 불며/ 자꾸만 절하는 저 붉은 입들"은, 우리보다 조금 먼저 생을 마감한 고등어에 바치는 겸허한 추모이자, '붉은 입'이 상징하듯 '뱀파이어'식 흡혈 욕망, 즉 '먹어야 산다'라는 욕망의 이중주, 혹은 '몸 섞기' 같은 것일 터입니다. 뜨거울수록 단단해지는 것이 어디 고등어뿐이겠습니까.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국민의힘은 15일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하여 서울, 경기, 인천, 울산, 광주·전남 등 5개 지역에 대한 재선...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중동발 전쟁 충격으로 긴장했던 국내 경제가 안정세를 보이며 증시는 5.20% 급등하고 환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오동운 처장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고발된 법왜곡죄 사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공권력 투입...
미국과 이란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민생고와 여론 악화 속에서 종전 협상 양해각서(MOU) 체결에 합의하고, 60일간의 휴전 및 호르무즈 해협..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