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도꾸리蘭 / 이해리

베란다 화초들 중에

가장 볼품없는 도꾸리蘭

언제 꽃 한 번 피운 적도 없고

이파리란 것이 꼭

빗다 만 머리카락처럼 부스스한 그것에게

날마다 물뿌리개 기울여 뿌린 물은

물이 아니라 무관심이었음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마른 잎 뜯어주려 손 내밀자 순식간에

쓱싹,

손가락을 베어 버린다 뭉클

치솟는 핏방울 감싸쥐고 바라보니

시퍼런 칼을 철컥,

칼집에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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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꾸리란(蘭)을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용설란(龍舌蘭)속 주병란(酒甁蘭)과의 멕시코 사막 원산인 건생(乾生)식물이라고 소개되어 있군요. 기부가 마치 배부른 호리병 모양으로 그 속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어서 '도꾸리'란이란 독특한 이름을 얻었더군요. 용설란속 식물답게 그 잎들은 가장자리가 칼날처럼 날렵하기도 하고요.

도꾸리란은 시인에게 "베란다 화초들 중에/ 가장 볼품없"으며, "언제 꽃 한 번 피운 적도 없고/ 이파리란 것이 꼭/ 빗다 만 머리카락처럼 부스스"한 것이어서 별 관심을 끌지 못했나봅니다. 그런 도꾸리란에 무심히 물을 주다 손을 베인 경험을, 습관적 "무관심"에 대한 도꾸리란의 날 선 복수로 읽어낸 것은, 단순하지만 범상하지만은 않은 시적 인식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처럼 '습관적 무관심'이라는 일상에 함몰되어가며 살고 있지 않던가요. "시퍼런 칼을 철컥,/ 칼집에 넣고 있"는 도꾸리란의 무사(武士) 같은 모습이 제법 서슬이 시퍼렇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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