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다인(茶人) 나들이

묵혀 둔 사랑은 한 번은 승화한다. 당시에 몰라서 밀쳐 두었거나 받아들일 수 없어 묻어 두었다고 해서 사랑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길고 짧음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랑은 성숙된 모습으로 다시 드러난다. 삼십 년째 장롱 속에 갇혀 있었던 사랑이 만인들 앞에 공개되는 순간 내 가슴에서도 찌릿한 전율이 일었다.

규방공예가 정 선생님은 작품 앞에서 음성마저 떨리는 듯했다. 다기를 싼 보자기를 푸는 손에서도 떨림이 느껴졌다. 옥색 바탕에 덧붙여진 정사각형의 분홍 천 조각들은 깍지 낀 손처럼 가지런했다. 다완이 하얀 몸을 드러내자 옥색 보자기에 촘촘히 박힌 푸른 바늘땀들이 빗물처럼 쏟아졌다. 시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침선했을 한 땀 한 땀에서 수많은 언어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비로소 아버님의 사랑에 보답합니다."

선생님의 시아버지는 며느리 사랑이 특별했는데 며느리를 본 지 불과 일 년도 못 살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들이 어렸을 적에 들이지도 않은 며느리가 하도 보고 싶어 며느리 한복감을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옷감의 색이 당신의 눈높이에 맞춘 옥색이었다. 그녀가 며느리가 되었을 때는 옷으로 짓지 못하고 그냥 받아서 장롱 속에 넣어두었다가 삼십 년 만에 '다인 나들이'란 작품으로 공예전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시아버지가 준 사랑을 수십 년간 간직하고 있다가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색이 변할까봐 한지와 신문지로 싸기도 했다는 등 무진장 애를 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무엇보다 오랫동안 장롱 속에 있었던 시아버지의 사랑을 나들이시켰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나도 장롱 속에 이십 년 가까이 묻어 둔 것이 있다. 결혼할 때 어머니가 한마디 남기며 내게 슬쩍 건네 준 것인데 삼단 같은 머리카락 묶음이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파마를 하고 잘라낸 것이니 머리카락은 육십 년 세월을 넘긴 것이다. 새까맣고 긴 머리카락은 열여덟 어머니의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네가 나이 먹고 늙어서 머리숱이 적어지거든 이걸로 가발을 만들어라."

나도 언젠가 한 번은 엄마의 사랑을 승화시킬 날이 올 것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에도 까딱없는 그것을 꺼내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머리카락처럼 변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여러 가지 사랑 중에 부모와 자식 간 사랑만은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에는 징표가 있으면 좋겠다. 후에 승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징표로 줄까 고민이다.

주인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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