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자녀 양육 때문에 살림하다 다시 일을 하려는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재진입은 힘들기만 하다. 이런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일자리 제공과 함께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분위기 조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달 26일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경북여성정책개발원과 경북새일지원본부 주최로 열린 '경북 여성정책 미래 포럼'에서 조정아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 소장이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높이는 데 대해 발표했다.
500여 명의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여성, 경북의 미래를 경영하라'를 주제로 다양한 특별강연과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조 소장은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인적자원 개발 사례와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멕시코를 제외하고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소장은 여성의 경우 고숙련, 고임금 직종에 있었다 하더라도 일단 경력 단절을 겪은 후엔 저숙련, 저수익 직종에 배치되는 것이 여성이 직면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여성들의 눈높이 차이도 경력단절 여성이 겪어야 하는 갈등이다. 월 150만원 미만의 급여를 제시한 기업은 70%나 됐지만 정작 150만원 미만의 급여를 원하는 여성은 47%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업은 20대 여성들을 찾지만 구직 활동을 하는 여성의 대다수는 30, 40대 여성에게 몰려 있다. 조 소장은 "많은 경력 단절 여성들이 경력을 계속 이어온 여성을 기준으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경력단절 여성에게 지원하는 교육은 기술적 지원이 대부분이다. 기술 교육을 통해 시장 진입을 쉽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조 소장은 여성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여성에 대한 지지라고 강조한다. 여성적 관점에서 여성의 삶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여성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두현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사무처장은 '전통문화 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전통문화 산업과 여성 일자리의 상관성에 대해 발표했다.
최근 전통문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면서 안동 소주, 안동 국화차 등 성공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통의 원형주의'에 입각해 전통이 자연스럽게 현대 산업으로 이행되지 못했지만 최근 뒤늦게 전통문화의 산업화 가능성에 눈뜨고 있다.
권 사무처장은 현재 산업화 가능성이 있는 천연염색, 전통음식 연구, 규방공예 등은 여성 개인의 소양 함양과 소일거리로 취급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통과 관련한 취미생활도 얼마든지 산업화할 수 있다는 것이 권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일례로 그는 안동 국화차를 예로 들었다. 안동 지조암의 한 스님이 심어서 만들기 시작한 국화차가 어느덧 6개 브랜드를 갖춘 안동의 대표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문경의 가양주인 호산춘도 명품으로 등극했다. 권 사무처장은 천연염색과 규방공예 등도 그런 과정을 거쳐 산업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디미방, 수운잡방의 경우 전시되는 음식은 볼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없다.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시적으로 음식디미방, 수운잡방에 등장하는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대신 전통을 되살리면서 오늘날 감각에 맞게 창의적으로 가공하는 것은 필수다. 예를 들면 수운잡방은 고춧가루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의 책이므로 고춧가루를 가미한 요리를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종가음식과 제사음식을 되살리고 안동 삼베를 브랜드화 한 제품을 제안했다. 고가 숙박 체험에도 여성 서비스 인력을 배치해 한층 고급화해야 한다는 것이 권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이날 주제 발표와 토론에 앞서 정동주 시인이 '역사에서 길 찾기, 경북 여성의 정체성'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그는 경북 여성들이 지향해야 할 표상으로 장계향(1598~1680)을 꼽았다. 조선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도 알려진 장계향은 조선 중기 시문과 서화에 능했고 자녀 교육에 귀감을 보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 퇴계 학맥의 계승자로도 꼽힌다. 퇴계 이황은 영남 사림의 학맥이 끊긴 상태에서 홀로 학문에 정진해 심학(心學)을 완성했다. 이는 학봉 김성일, 경당 장흥효로 이어지고 경당의 딸 장계향 부부로 내려오면서 그 맥을 잇게 된다.
정 시인은 퇴계 심학이 지향한 '다양성과 소통'이 장계향을 통해 그 자녀들에게 교육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가르침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어머니를 통한 가르침이 더욱 크고 내밀하며 따뜻한 힘"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경북 차원에서 장계향의 삶과 학문을 재조명하고 현대에 적용시킬 수 있는 미덕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정 시인에 따르면 장계향이 강조한 근독(謹篤) 정신이야 말로 오늘날 황폐해진 경쟁과 이기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치다. '남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을 삼가는 마음'인 근독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정 시인은 "경북은 끊임없이 재해가 들고 세상이 뒤집어져도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인재를 꾸준히 길러왔다. 장계향의 이런 가르침이 경북 어머니들의 DNA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 한재숙 원장은 "경북의 미래를 열어갈 주체로서 활동해 나갈 경북 여성의 저력과 리더십을 새롭게 조명하고 향후 인적자원개발의 방향과 과제를 모색하고자 마련한 자리"라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모여 여성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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