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18)] 문희갑 前 청와대 수석의 결단력

제5공화국 초기 김재익 경제수석에 의한 경제개혁은 오래지 않아 성과가 나왔다. '물가상승 3%'의 목표를 내건 지 2년 만인 1983년부터 3%대에 진입함으로써 안정 기반을 구축하였고, 경제성장률도 정상궤도인 10% 내외를 회복하였다.

개발연대 한국경제의 고질병이었던 인플레이션은 이렇게 해서 잡았다. 하지만 만성적인 무역적자 해소 문제가 남아있었다. 아무런 생산기반이 없었던 한국은 기계설비에서부터 석유'철광석 등 모든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으니, 무역수지가 적자일 수밖에 없었고, 외국 빚으로 적자를 메워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마침내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 국가경영에도 적용되었다. 해외로부터 불어온 저금리'저달러'저유가의 소위 세계적 '3저 현상'을 맞이하면서 한국경제는 1980년대 초반에 각고의 노력으로 준비한 돛을 하늘 높이 올릴 수 있었다.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무역수지가 1986년부터 흑자로 전환되어 1988년에는 89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그리하여 '88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이 '이제는 우리도 못사는 후진국이 아니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밤낮없이 움직이고,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제가 호황을 이루고, 수출입 물동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고속도로'철도'항만'공항 등 각종 물류 관련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교통시설 부족으로 인한 물류비용이 GDP의 17% 수준에 달했다. 물류비용 때문에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국민생활도 불편해진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은 그해 12월,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추진력을 자랑하던 예산통 문희갑을 경제수석에 임명하였다. 문 수석에게 주어진 큰 임무는 자고 나면 치솟는 집값을 잡는 일과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각종 교통시설을 확충하는 일 이 두 가지였다.

그는 분당'일산 등 5개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통하여 폭등하는 집값을 잡았고, 이 덕분에 1990년대 내내 주택가격이 안정을 유지하였다. 또한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도시에 영구임대주택 20만 호 건설도 추진하였다.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의 다음 목표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문 수석은 당면한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인 처방과 아울러 선진국을 향한 장기교통계획을 세웠다.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도 협소하고 소음 문제에 시달리던 김포공항을 대체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많은 입지를 검토한 후에 인천 앞바다 영종도에 동북아 허브공항을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노태우 대통령의 결심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계획 수립 12년 만인 2001년 3월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현재 일본이나 중국도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산업화 시절 국가의 대동맥 역할을 하였던 경부고속도로의 서울-부산 간 통행시간은 평소에도 6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문제가 심각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였다.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제2경부선철도 건설 두 개의 안이 제기되었지만, 문 수석은 일본의 신칸센'프랑스의 테제베'독일의 이체 수준의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제3안을 수립하여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지구온난화 시대를 대비하는 21세기적 교통수단에 대한 선견지명이었다고도 생각된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를 표방하는 정권들은 경제성'기술 선정 등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고속철도 건설에 제동을 걸었지만, KTX 브랜드의 고속철도는 2004년 4월 서울-대구 구간이 개통되었고, 금년 11월이면 부산까지 전 구간을 2시간 18분에 주행하게 된다. 녹색성장시대를 맞이하여 호남고속철도 등 전국에 KTX 건설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한국형 고속철도가 세계시장을 누빌 날도 머지않았다.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과 탁월한 추진력의 문 수석이 아니었더라면 인천국제공항과 KTX는 아마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동남권신공항 밀양 건설을 촉구하는 1천만 명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영남권 지역 1천300만 주민들의 생존과 지역발전의 명운이 달린 동남권신공항에 대하여 정부는 '수요가 없다' '가덕도와 밀양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는 등의 궁색한 이유를 대며 자꾸만 미루고 있다. 문희갑 수석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과 큰 정책 스케일, 강력한 추진력이 다시금 생각나는 시점이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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