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소녀, 日 최고극단 四季 주인공 되다

뮤지컬배우 황지혜씨

세계 최대의 극단. 연매출이 1조원에 이르는 극장 기업. 소속 배우만 700명, 전용극장이 일본 전역에 13개인 일본극단 사계(四季)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사계의 배우들 중 한국 출신은 57명, 그 중 주역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포항 출신의 황지혜(28) 씨가 눈길을 끈다.

4살 때 피아노를 시작, 포항예고를 나와 영남대에서도 피아노를 전공한 평범한 음악도였던 그가 뮤지컬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는 대구시립극단(당시 감독 이상원 뉴컴퍼니 대표)의 로미오와 줄리엣 배우 오디션.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하고는 막연하게 동경했던 뮤지컬의 세계를 눈앞에 두고 "고민 끝에 후회라도 갖지 말자"는 생각에 응한 결과가 덜컥 주연 배우였다. 노래도, 연기도, 춤도 몰랐던 그였기에 무모하고 엉뚱한 도전이었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줄리엣 역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배들로부터 연기, 호흡, 서있는 자세, 캐릭터 만들기, 대사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배웠고 화려하고 행복하기만 해보였던 무대 뒤엔 눈물과 땀이 있다는 사실도 체험했다. 그러면서 적당한 때에 그만둘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바꾸는 또 한번의 계기를 만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공연날 한 여중생 팬이 밤새 적었다는 편지를 전해주었다. 거기에는 "책보다 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좀 더 큰 무대에 서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 소녀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겼고 좀 더 큰 무대에 서서 좀 더 좋은 배우가 되자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2006년 11월에 있은 일본 극단 사계의 오디션. 황 씨는 남들처럼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한다든가 유명한 뮤지컬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잘 못했기 때문에 안 한 것이기도 했다. 대신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고 생각했다. 그는 심사위원들에게 피아노를 치면서 '조이풀'(Joyful)이라는 노래를 했다. 결과는 합격.

2007년 2월 일본으로 가 아침에는 청소, 발레, 재즈 댄스, 호흡법을 배우고 오후에는 일본어 수업, 대사연습을 하면서 지냈다. 일본어도 잘 하고 연기와 성악을 전공한 동료들을 보면서 조바심이 났지만 그럴수록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무조건 닥치는 대로 연습, 또 연습을 했다. '이제부터 배우면 된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기로 다짐했다. 차츰 오페라의 유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위키드에 출연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극단 내 정기 오디션을 통해 캣츠의 주인공 '그리자벨라'역을 맡게 됐다. 일본행 1년 10개월만의 일이었다.

황 씨의 강행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본행 이후 혼자서 계속해서 연습했던 역할이 있었는데 그건 뮤지컬 '위키드'의 주인공(초록색 마녀) '엘파바'. 처음 위키드를 봤을 때 화려한 무대와 의상, 충격적인 시나리오, 압도적인 음악과 '엘파바'라는 캐릭터에 매료되어 혼자서 연습을 시작했던 것. 신인이 하기엔 너무 어려워 당장 할 수는 없었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꿈을 버리지 않고 묵묵히 연습했다.

드디어 올해 2월, 꿈에도 그리던 '엘파바' 역에 뽑혔다. 일본에 온 지 만 3년이 지난 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스물일곱 번째 생일날의 일이었다. 3월에는 일본 MBS방송국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한국 뮤지컬 여배우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http://www.you tube.com/watch?v=fr5FM6kyJeI&feature=channel)를 찍기도 했다.

황 씨는 지금도 외롭고 힘든 싸움이 계속될 때, 도망가고 싶을 때는 여중생의 편지처럼 팬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어본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무대에 서든지 어떤 역할을 하든지 어떤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든지. '가슴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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